이순재와 정동환. 두 원로배우가 또 한 번 난도 최상급 무대에 오른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시인 이상이 ‘오감도’를 발표하던 시절인 1934년 태어난 이순재는 우리나라 현역 최고령 배우. 49년생인 정동환 역시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 52년 전 연극 ‘낯선 사나이’로 정식 데뷔한 노장(老將)이다. 평생을 영화와 TV드라마, 그리고 연극에서 활약한 두 배우가 지닌 무대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펄펄 뜨겁다.
◆이순재의 연극 ‘리어왕: KING LEAR’
◆배우 정동환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개막 박두인 극단 피악의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공연 시간이 무시무시할 정도다. 1부 180분, 2부 160분, 총 340분으로 여섯 시간에 가깝다. 이미 2017년에도 같은 무대에 섰었던 정동환은 이번에도 여섯 시간 동안 1인5역을 맡는 대여정에 도전한다. 젊은 시절 일본과 미국에서 연극을 배우며 생활고를 버티기 위해 사탕수수 농장, 빌딩 청소용역 등에서도 일했다는 정동환은 요즘 연극 무대에서 나이를 잊은 듯 맹활약 중이다. ‘레이디 맥베스’ ‘고곤의 선물’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단테 신곡-지옥편’ 등 깊이 있는 작품에서 꾸준히 원숙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2017년 공연은 ‘고전의 무대화에 이상적인 표본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공연은 초연 무대에 깊이를 더했다. 나진환 연출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극단 피악이 레퍼토리 극단으로 거듭나서 자생력을 키워가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자 도전”이라며 “20년 동안 계속 지켜온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질문이 우리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신념을 무대에서 증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원작은 니콜라이 1세 반란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던 젊은 시절 도스토옙스키가 감옥에서 만난 한 청년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실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무대에선 육십 나이에 이른 도스토옙스키가 마침내 탈고한 소설로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관객에게 처음으로 들려주며 시작한다. 정동환이 연기할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로 참여하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설명하는 작품 해설자 역할도 담당한다. 가장 기대되는 장면은 1막 마지막. 초연 당시 정동환이 보여준 대심문관의 20분 독백 장면은 지금도 연극계에서 회자될 정도다. 서울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10월12일부터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