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이 지방이전 대상 기관이 아닌데도 1000억원을 들여 대전 이전을 강행하고 있지만, 졸속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상청은 최근 기상 예보·관측에 필요한 전산센터 이전 용역 계약 체결에도 실패했다. 정치권이 지역 여론을 의식해 기관 이전의 효용성을 따지지 않은 채 이전을 결정한 뒤 ‘짜맞추기’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월 중소벤처기업부 세종 이전이 결정된 데 따른 대전 민심 달래기용이라는 지적이 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이 5일 기상청에서 제출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기상청은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대전 이전이 결정됐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이달 안으로 기상청 지방이전 계획을 의결해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기상청은 현재 내년 2월과 2026년 7월 각각 1·2차 이전을 목표로 국가기상센터 신축 예산 826억원 등을 포함한 966억원 규모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설비 이전·구축 비용, 임직원 이주지원금 등은 제외돼 총 사업비는 증가할 예정이다.
기상청은 지난달까지 본청 전산센터 이전을 위해 진행한 7억원 상당 긴급조달 용역 계약에 모두 실패했다. 1순위 협상 업체는 기술 협상 단계에서 돌연 계약을 포기했다. 또 다른 업체와 계약도 결렬됐다. 기상청 전산설비는 내부 서버와 각종 영상·분석장비 등 총 1739대 규모다. 올해 관리비용만 140억원이 든다. 기상청 관계자에 따르면 전산설비 이전이 어려워 계약이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상청은 비용이나 리스크 등으로 설비 이전이 불가능할 경우, 전산시설만 현 청사에 남겨두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기상청은 “업체들이 제안 요청서에 요구된 부분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기상청은 애초 2005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고시에서 ‘이전 시 활용이 곤란한 특수설비 보유’를 이유로 행정중심복합도시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다. 첨단 장비를 설치 운용하는 기관 특수성을 감안해 지방이전에 따른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오재호 부경대 명예교수(환경대기과학과)는 “과거 이전 불가 사유는 그대로인데 중기부가 (세종으로) 가면서 밀려서 가는 형태”라며 “전산센터에 서버, 디스플레이, 통신장비 등이 모두 구축돼 있는데 이걸 뜯어가면 얼마나 빨리 복구될지 걱정스럽다. 많은 지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상청 이전 순기능으로 국토 균형발전을 강조한다. 그러나 권 의원실이 입수한 지난 5월 기상청 임직원(493명) 대상 내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상청 이전과 관련해 전 가족이 대전 이주를 계획하는 비율은 25.6%(126명)에 불과하다. 40.4%(199명)는 단신 이주를 생각 중이며, 휴직·퇴직을 고려하는 응답자 비율도 13.4%(66명)에 달했다. 11.4%(56명)는 고속철도나 버스로 서울에서 출퇴근하겠다고 답했다. 가족 일부 동반 이주 응답 비율도 9.3%(46명)에 그쳤다. 기상청 직원들의 지역 정착 비율이 낮을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권 의원은 “현재 IT 전산설비 이전조차 어렵고 비용 추계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무리하게 추진하기 보다는 전산 자원 이전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한 후 이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수반돼야 한다”며 “기상청 이전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졸속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해당 전문가 토론과 여론 수렴의 숙려 과정을 거쳐 심도 있게 검토된 후에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