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근깨 소년이 멋진 무용수로 성장, 무대에서 가장 힘센 백조가 되어 높이 도약하는 마지막 장면은 언제 봐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가 명절 때면 철새처럼 안방극장에 다시 돌아오곤 하는 이유다. 아마 ‘나홀로 집에’(1990) 이후 최고의 가족영화로 꼽힐 만하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이런 원작의 매력적인 개성 포인트를 고스란히 가져오면서 새로운 시선과 상상력을 보여준다. 흥행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데 사실 민망한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소수에 속하는 성공 사례 중에서도 높은 곳에서 빛나는 작품이다.
그만큼 빌리의 이야기는 결국 파업 안에 놓여있다. 장중한 광부들 합창으로 시작한 공연은 파업이 실패하고 광부들이 일자리로 돌아가며 끝난다. 빌리가 왕립학교로 시험 보러 갈 여비조차 없어 쩔쩔맬 때 없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동료 광부들이 십시일반하는 감동적 장면은 영화 때도 이를 넣고 싶어했던 연출이 뜻을 이룬 결과다. 결국 정부와 회사에 굴복하고 막장으로 가는 승강기를 타면서 광부들이 헬멧 위 전등을 켜는 장면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빌리 엘리어트’의 가장 큰 감동은 역시 무대에 선 아이들이다. 모두 29명인데 이 중 지난해 2월 시작된 오디션에서 선발된 소년 4명이 18개월이나 고된 훈련을 거쳐 빌리로서 무대에 번갈아 오르고 있다.
2005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빌리 엘리어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연된 건 2010년, 2017년, 그리고 올해다. 아이들은 빨리 자라니 지금 빌리는 이번 공연이 끝나면 다시 만날 수 없다. 무대에 서는 어린이들이나 관객 모두 ‘지금 이 만남이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라는 ‘일기일회(一期一會)’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기초 체력훈련과 춤의 기본기를 다진 후 격렬한 춤을 춘 후에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게 노래할 수 있는 호흡법을 몸에 익히고 80쪽에 달하는 대본과 노래를 외웠다. 그러면서 장면의 감정을 익히고 무대 동선을 익힌 후 어른 배우들과 함께 실제 무대와 동일한 구조를 갖춘 연습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또 맞췄다. 2010년 초연 당시 그처럼 좋아했던 영화 마지막 장면이 뮤지컬에선 빠진 점을 확인하고 서운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다시 보니 뮤지컬은 홀로 체육관에서 춤을 추던 소년 빌리가 역시 발레 ‘백조의 호수’ 테마곡에 맞춰 상상 속 성인 빌리와 함께 이인무를 추는 장면으로 이를 보상하는 데 충분하다.
12, 13세 소년을 키우다시피 훈련한 제작사는 이번 빌리들을 이렇게 정을 듬뿍 담아 소개한다. “김시훈군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신과 싸움을 하며 가장 기복 없이 성장했다. 이우진군은 뛰어난 머리와 타고난 체력, 그리고 지구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길을 찾은 노력형이다. 전강혁군은 독보적인 발레 강자로 배워 본 적 없는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서 말하고 걷고 표현하는 법을 알아가며 반전 매력을 보여준다. 주현준군 첫 이미지는 주인공 친구 ‘마이클’이었으나 거침없이 도전하며 단시간 눈부신 발전을 해서 결국 주역을 따낸 오뚝이다.” 서울 대성디큐브아트센터에서 내년 2월 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