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미 민주화 보상 받아” 기각 헌재 가서야 일부 위헌 결정 내려 81세 피해자 판결 나흘 뒤 영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하고 억울하게 3년간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받는 길이 47년 만에 열렸다. 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에 따라 지원금을 이미 받은 ‘긴급조치 1호’ 피해자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결이 뒤집어진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이 소송의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지 나흘 후 세상을 떠났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긴급조치 1호’ 피해자였던 오종상(81)씨가 낸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심에서 ‘2016년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고 오씨에게 1억1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오씨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시절인 1974년,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에게 “유신헌법 아래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며 정부 시책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강제 연행됐다.
이후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허위 자백을 했고,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오씨는 1977년 만기출소했다.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이 1974년 도입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오씨 사건에 대해 ‘위헌적 긴급조치 발동으로 헌법상 권리를 제약하고 형사 처벌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한 뒤, “국가가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결정했다. 오씨는 2009년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2011년 오씨에게 적용된 대통령 긴급조치 1호가 무효라는 이유로 무죄를 확정했다. 이에 오씨와 가족들은 2011년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소송을 청구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는 오씨가 2005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구금 관련 생활지원금 4200여만원과 형사보상금 1억8400여만원을 받은 게 쟁점이 됐다. 민주화보상법은 이 법에 따른 보상금 지급 결정에 피해자가 동의한 경우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재판에서 ‘화해’란 양측이 소송을 끝내기로 합의하는 것이라, 일단 보상금을 받기로 했다면 더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