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에 따라 갚을 수 있는 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이 이뤄지고, 대출금 상환도 보다 강화된다. 당초 상환 능력의 지표가 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2년의 여유를 두고 단계적으로 강화하려던 것이 이번 강화방안을 통해 1년으로 줄었고, 제2금융권에 적용되는 DSR 기준도 강화된다. 실수요자와 서민층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이어지며 올 4분기에 가계부채 총량 한도에서 전세대출을 제외하는 등 보완대책도 마련했지만, 강화된 규제가 앞당겨 시행되는 만큼 본격적인 대출 한파가 닥칠 전망이다.
◆차주별 DSR 규제, 시행시기 앞당기고 제2금융권 확대
제2금융권에 대해 개인별 DSR뿐 아니라 금융회사별 평균 DSR 규제도 강화된다. 현재 보험, 카드,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각 업권의 평균 DSR 규제는 70∼160%인데, 내년부터 50∼110%로 강화된다.
제2금융권의 대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내년 1월부터 카드론도 차주별 DSR 대상에 포함된다. 현재 카드론의 만기는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2∼3년으로 운영되는데, 1년 단위가 가장 많다. 중도상환수수료도 없어 영세자영업자와 중·저신용자의 ‘급전’ 조달통로로 주로 활용된다. 만기가 짧은 만큼 DSR에 미치는 영향도 강력해 카드론으로 몇천만원을 빌리게 되면 다른 대출이 아예 막힐 수 있다.
DSR를 계산할 때 적용되는 대출 만기도 축소된다. DSR 계산 시 적용하는 만기를 대출별 평균 만기로 조정한다. 이에 따라 신용대출의 경우 7년에서 5년으로, 비주택담보대출은 10년에서 8년으로 만기가 줄어든다. 대출 만기가 축소되면 연간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만큼 대출 한도도 더 줄어든다.
◆서민·실수요자 보호 방안 담았지만…
이번 방안에는 서민이나 실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도 담겼다. 앞서 실수요자에게 전세대출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올해 4분기에 취급된 전세대출은 총량 관리 한도(증가율 6%대)에서 제외하기로 한 바 있다. 다만 서민층 실수요자 위주로 자금이 공급되도록 대출 심사는 강화한다. 정부는 또 올해 총량 관리 내에서 집단 대출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아울러 다음 달부터는 결혼, 장례, 수술 등 실수요가 인정되는 신용대출을 연 소득 대비 1배로 제한하는 조치에서 일시 예외를 적용하기로 했다.
서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중금리·서민금융 공급도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중·저신용자 대상의 중금리 대출 확대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올해는 32조원, 내년에는 35조원 규모로 공급할 예정이다. 서민금융상품 공급도 점차 늘려 2022년까지 10조원대로 확대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대책을 차질 없이 수행해 내년도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근접한 4∼5%대 수준으로 안정화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올해 4월 가계부채 대책 발표 당시 설정한 내년 목표 ‘4%’보다는 1%포인트가 높아진 것으로, 가계부채 총량으로는 약 16조원에 해당한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상황을 지속 점검하는 과정에서 추가 대책(플랜B) 가능성도 시사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코로나19 위기극복 과정에서 신용확장 국면이 상당 기간 전개되며 가계부채 잠재위험이 심화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유념할 점은 금융안정을 확고히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권에서는 대출 문턱이 높아지며 정부의 목표와 달리 고소득층보다 서민·실수요자에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반응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차주별 DSR 규제로) 대출을 갚을 능력을 따지게 되면 저소득층은 애초 대출 한도 자체도 작은데 거기에 분할 상환까지 들어가니까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자산 가치는 많이 올랐는데 집값 대비 개인의 대출 한도가 많이 줄어들면서 혼란도 예상된다”며 “경계에 있는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역차별 이슈도 불거질 수 있는 만큼 보다 세심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