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싶었어요. 함께하면 변화도 커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줄이기)와 ‘비건’(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을 지향하는 제비족 생활 2년째인 이정민(22)씨는 ‘연대감’을 느끼고 싶어 서울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연합)에서 주최한 ‘제비의 삶’ 캠페인에 참여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환경연합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한 제비의 삶 캠페인 시즌2를 지난 8월23일∼9월19일 4주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매주 제로웨이스트와 비건 관련 미션을 수행하고 애플리케이션(앱)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를 인증했다.
이씨는 쓰레기 문제가 기후생태위기로 이어지는 것에 경각심을 갖고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했다. 이후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비건의 길을 걷고 있다. 이씨는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이 추구하는 게 다르지 않다”며 “둘 다 적게 소비하고 필요하지 않은 걸 거부하는 미니멀리즘 삶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말했다.
2년째 이씨는 ‘지나침’을 경계하는 일상을 이어간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고 텀블러와 손수건을 항상 지녔고 수저와 용기 등도 자주 챙겨다녔다. 새 물건을 사기보다는 중고품을 구하거나 기존의 물건을 리폼해 재사용했다. 일회용 빨대처럼 없어도 충분한,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거절했다. 육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친구들과 비건 식당을 찾아가고, 논비건 식당에서는 계란 등 동물성 재료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비건식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이씨가 ‘유별’난 게 아니다. 환경을 위한 제비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제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9일 환경연합에 따르면 제비의 삶 시즌2에 총 1600여명이 참여해 제로웨이스트(거절하기·줄이기·재사용하기·재활용하기)와 비건(한 끼 채식·동물성 의류 찾기·비건식당 방문·비건제품 소개) 미션을 수행했다. 앞서 환경연합이 지난 3월 진행한 제비의 삶 시즌1 때도 참가자가 2000여명이 몰린 바 있다.
환경연합 신우용 사무처장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와 환경문제에 예상보다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캠페인이 끝나고도 참여했던 분들이 자발적으로 계속 제비를 실천하면서 환경운동을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환경연합이 캠페인 참가자 6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앞으로도 계속 실천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각각 99.8%(623명)와 85.6%(534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빠르게 변하는 시민의식에 비해 정부와 기업의 움직임은 더디다. 신 처장은 “정부와 기업이 시민들의 의지를 낮잡아 보는 것 같다”며 “‘플라스틱 어택’(과대포장 거부운동) 등 시민들이 환경을 위해 요구하고 바라는 변화는 정부와 기업이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크다”고 말했다. 환경연합 박정음 활동가는 “기후위기 해결을 개인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며 “기후위기는 화석연료를 남용하는 산업과 이를 정책적으로 방관한 정부의 탓이 크다”고 꼬집었다.
쓰레기를 줄이고 채식을 늘릴 여건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앞선 설문조사 응답자 중 94.9%(592명)가 제로웨이스트숍 확산을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제로웨이스트숍 이용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로 75%(282명)가 ‘집과 거리가 멀어서’를 꼽았다.
비건 관련 질문에서는 응답자의 84.9%(530명)가 대형마트에서 비건 식품을 구매하는 게 쉽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어떤 제품이 비건 식품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다’, ‘마트에 구비된 비건 제품의 수가 충분하지 않다’ 순이었다. 이씨는 “제로웨이스트숍이나 비건 식당이 서울에 몰려있어서 불균형이 심하다”며 “선택지가 적어서 제비를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제비를 지향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 활동가는 “제비는 ‘인지하는 삶’의 방식”이라며 “제비를 실천하려면 우선 우리가 먹고 쓰는 것들이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떻게 폐기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며 사는 삶의 부작용을 깨닫고, 이를 성찰하며 사는 삶의 방식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제비를 개인이 할 수 있는 ‘쉽고도 느린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제비를 지향하는 것 자체로 이미 작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전체를 바꾸지는 못해도 일부를 바꿀 수 있다면, 가능한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게 의미가 없진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