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한성도읍기 왕성으로 유력한 ‘풍납토성’의 비밀이 한꺼풀 벗겨졌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28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풍납토성 축성기술의 비밀을 풀다’ 학술대회를 통해 2021년 풍납토성 서성벽 복원지구 조사성과를 공개했다. 이번 학술대회 기조강연을 맡은 충남대 박순발 교수는 “금번 풍납토성 서성벽에 대한 조사는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고대 판축 축성술 이해에 일대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회라 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풍납토성 동성벽 절개 조사 이후 정연한 판축기술이 적용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이번 조사로 그 증거가 드러나며 확실해졌다. 2021년 조사에서는 풍납토성 축성기법을 확인하기 위해 기존의 단면 위주 성곽조사에서 벗어나 서성벽 구간에 대한 평면조사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 성벽에서 판축단위인 방형의 판괴(版塊)가 연속으로 덧대어 축조된 모습과 판괴를 쌓아올리기 위한 판축구조물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는 판축토성의 가장 강력한 증거로 이번 조사를 통해 풍납토성이 판축토성이었음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또 성안에서는 서성벽 내부 순환도로에 해당하는 도로유구가 확인됐다. 성벽 내부 순환도로는 성문(城門)과 연결된 백제인들의 이동통로로, 도로면에서는 수레바퀴 흔적과 수레바퀴를 끌었던 소와 말의 발자국도 함께 드러났다. 서문(西門)을 통해 유입된 물자는 소와 말이 끄는 수레에 실어 풍납토성 곳곳으로 이동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2009년 미래마을 조사 보고서에서 풍납토성 남북 도로와 동서도로가 언급된 바 있지만 순환도로 유구는 처음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현존 도로 흔적은 너비가 6이지만 실제로는 더욱 넓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도로 측면에서는 폭 1∼1.2, 깊이 0.8인 구덩이가 드러났다. 도로 표면에는 수레바퀴 자국과 말·소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수레바퀴는 크기가 1.2∼1.8이고, 도로와 접촉하는 면의 폭은 8∼15㎝로 추정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서성벽 순환도로는 서문터에서 시작해 성벽을 따라 미래마을 남북 도로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며 “풍납토성 서문으로 들어온 물자는 소와 말이 끄는 수레에 실려 내부로 옮겨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로 측면 구덩이는 노면이 변하면서 보수작업과 재굴착이 빈번히 일어났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덧붙였다.
서성벽 기초부에서는 멧돼지 어금니와 개 뼈를 담은 항아리도 출토됐다. 해당 유물은 건축물 기단부를 조성할 때 나쁜 기운을 진압하려고 묻는 ‘지진구(地鎭具)’로 판단됐다. 조사단은 서성벽이 한강과 인접한 자연 제방을 바탕으로 축조됐으며, 기장족 과실·가지속 종자·오이속·박속·삼·명아주속·괭이밥 등 다양한 식물로 지반을 튼튼히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