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월세 내기도 빠듯해져 추가로 대출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미 은행권 대출이 있어 제2금융권으로 알아봤는데 금리가 모두 연 15∼16%대였습니다.”(포털 카페 ‘채무해결커뮤니티’ 사연 중)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2000만원 정도 대출을 받으려고 합니다. 지금도 매출이 바닥이어서 금리가 1%라도 낮은 곳을 추천받고 싶습니다.”(포털 카페 ‘금융사이다’ 사연 중)
요즘 대출 금리는 자고 나면 오를 정도로 상승 속도가 빠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1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기준)는 연 3.31∼4.814%다. 지난 8월 말보다 상하단이 각각 0.69%포인트, 0.624%포인트 올랐다. 주담대 고정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3.97∼5.377%로 같은 기간 상단 1.05%포인트, 하단 0.957%포인트 급등했다. 신용대출 금리는 1등급 1년 기준 연 3.35∼4.68%로 상단 0.33%포인트, 하단 0.51%포인트 상승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올리면 주담대는 연말 6%대에 진입할 수도 있다.
은행 대출은 되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미 빚이 있는 자영업자들이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이나 카드사 등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데 이미 금리가 15%를 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위해 금융권 대출을 조였다지만, 유탄은 자영업자들이 맞은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공개한 ‘자영업자 부채의 위험성 진단과 정책방향’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속에 금리 상승과 대출 옥죄기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짚었다. 오윤해 연구위원이 신용평가사 자료를 토대로 가계대출이나 사업자대출을 보유한 개인사업자 444만명을 분석한 결과, 지난 8월 말 기준 이들의 대출 잔액은 988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사업자대출이 572조6000억원이고 가계대출은 415조9000억원이다.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2019년 12월 말 대비 173조3000억원(21.3%) 늘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일반가계 대출 증가율(13.1%)의 1.6배나 된다.
대출의 질도 나빠졌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개인사업자가 보유한 가계대출 증가율은 은행권에서는 하락했지만, 비은행권에서는 계속 상승했다. 특히 올해 1분기 이후 캐피탈·카드·저축은행에서 개인사업자 가계대출 증가율이 급등했다. 사업자대출도 고금리 업권에서 상승했다. 그러다보니 자영업자 중 다중채무자도 지난해 1분기 110만9000명에서 올해 2분기 140만6000명으로 늘었다.
시중 금리 인상은 2030세대의 ‘빚 폭탄’ 뇌관으로도 작용할 조짐이다.
코로나19 확산과 이에 따른 저금리 기조가 시작된 지난해 1분기 이후 20대와 30대의 가계 대출은 눈에 띄게 불어났다. 지난해 4분기 연령대별 대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20대가 무려 30.5%에 달했고, 30대도 14.4%를 기록해 40대(3.5%)와 50대(0.6%)를 압도했다. 절대적인 대출 총액은 40대와 50대가 더 많지만, 단시간 내 대출이 늘었다는 점에서 청년층이 금리 인상에 더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이 추가로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시중 금리는 더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자영업자와 청년 세대의 살림살이를 더 팍팍하게 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한은이 이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동결된 지난달 12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6명 위원 가운데 2명은 ‘0.25%포인트 인상’ 소수 의견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고금리 시대' 충격 가시화
가계부채 증가율을 낮추기 위한 정부의 규제가 강해짐에 따라 금리 인상 등의 효과가 금융권에 연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출 풍선효과’까지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일수록 ‘대출 한파’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6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차주(대출자)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시행 시기를 앞당기고, 은행권의 대출 조이기로 인한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제2금융권에도 DSR 기준을 강화한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이에 따라 현재 차주별 DSR는 은행권에 40%, 제2금융권에 60%가 적용 중인데, 내년 1월부터는 제2금융권 DSR 기준이 50%로 강화된다. 구체적으로는 보험사 50%, 카드사 50%, 캐피탈 65%, 저축은행 65%, 상호금융 110%다.
아울러 차주별 DSR 산정에 카드론도 포함하는 방안이 내년 7월에서 내년 1월로 앞당겨졌다. 금융위는 “그간 저소득·저신용자의 신용위축 가능성 등을 감안해 카드론을 차주별 DSR 산정에서 제외해 왔지만, 최근 가계부채 증가속도 등을 고려할 때 카드론이 취약 차주의 부실을 심화시키는 뇌관이 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강화방안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대출한도가 줄면서 동시에 대출금리도 올라가게 됐다. 정부의 의도대로 갭투자 등의 수요는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경영난·생계난이 가중된 취약계층의 경우 오히려 대출 수요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된서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카드론은 급전이 필요한 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제도권 대출”이라며 차주별 DSR 규제의 조기시행으로 취약계층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업계를 비롯한 제2금융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금융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일찌감치 제기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의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며 제2금융권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자금대출, 긴급자금 목적의 소액(300만원 이하) 신용대출 등에 대해 DSR 산정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지만 우려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제3금융권으로 불리는 대부업계로 대출 수요가 전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이와 관련한 풍선효과는 아직까지는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권부터 제2금융권, 대부업계까지 모두 대출이 녹록지 않은 만큼 자금 마련이 시급한 금융 취약계층 입장에서는 대출한도가 줄거나 막히고 대출을 하더라도 금리는 높아지는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이들이 불법 사금융을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로 은행권 대출이 까다로워지자 자영업자들의 저축은행·카드·캐피탈 등 고금리 대출 의존이 심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자영업자 부채의 위험성 진단과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자영업자들이 고금리 대출이 필요할 정도로 계속 경영상황이 어렵고 자금 수요가 많다”며 “(은행에서) 저금리 자금을 이용할 수 있다면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지 않았을 텐데 최근 은행권 대출 공급량이 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상황으로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 연구위원의 보고서를 보면 올해 8월 기준 금융권별 전년 동기 대비 개인사업자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은행 6.5%, 보험·상호금융조합 8.4%, 캐피탈·카드 9.6%, 저축은행 15.5% 등이다. 개인사업자의 사업자대출 증가율은 은행 11.3%, 보험·상호금융조합 26.8%, 캐피탈 20.1%, 저축은행 19.8% 등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가 자영업자의 고금리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 연구위원은 “향후 금리가 추가 인상되고 은행권의 DSR 규제가 강화되면 누적된 코로나19 피해로 자금 부족을 겪는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 가계대출 규제 강화와 함께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과정에서 코로나19의 충격을 크게 받은 자영업자의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