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세버그는 미국 배우이자 인권운동에 힘쓴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1938년생인 세버그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흥행작이 없어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다. 미국 사회를 바꾸려 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잊혀진 한 여성을 되살린다는 점에서 영화 ‘세버그’는 의미가 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1960∼70년대 인종차별로 망가지고 뒤틀려 있던 미국의 추한 민낯을 아름다운 여배우의 비극적인 생애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미국 정부의 표적이 된 여배우
영화는 흑인 인권운동을 탄압하던 미국 정부와 FBI가 정치공작을 위해 한 여성을 망가트리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정작 세버그가 왜 인권운동에 앞장섰는지,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갖고 있었는지는 잘 드러내지 못했다. 할리우드에서 손꼽히게 예쁜 배우가 관객들의 시선을 현혹하는데, 불륜 등 FBI의 먹잇감이 된 소재가 스크린에서 강조된 나머지 주인공이 호소하던 진짜 ‘내면’을 비춰내는 데는 실패한 모습이다.
◆주인공보다 빛나는 주변 인물들
영화 속에서 세버그역을 맡은 주인공보다 더 입체적인 인물은 사실 허구의 인물인 FBI 신입 요원 잭 솔로몬(잭 오코넬)이다. 감청 전문가인 그는 실력과 사명감을 두루 갖췄다. 꿈꾸던 현장에 배치됐지만, 자신이 민간인 사찰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내부고발자가 되어 진실을 세버그에게 알린다.
이 영화는 FBI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는 존 에드거 후버 국장의 지휘 아래 진행된 비밀감시작전 ‘코인텔프로(COINTELPRO)’를 통해 정부가 세버그를 불법감시했다는 사실을 담은 비밀문서를 바탕으로 한다. 코인텔프로는 ‘Counter Intelligence Program’의 약칭이며 FBI가 미국 내부의 저항 정치조직을 조사하여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한 프로그램이다.
이 작전 대상에는 마틴 루서 킹 2세의 남부 기독교 지도부 대회와 쿠 클럭스 클랜(KKK) 등 인종차별주의 조직들을 포함돼 있으며, 문서에는 FBI 요원들에게 ‘색출, 처단, 거짓 정보 유포, 악명, 그리고 전반적으로 무력화시키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겨 있다.
세버그의 두 번째 남편이자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소설가, 외교관 로맹 가리는 영화에서 비중은 적지만, 이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세버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뿐 아니라 세버그의 사망이 FBI와 관련 있다는 것 역시 최초로 폭로했다.
그는 우리에게 필명인 ‘에밀 아자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75년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공쿠르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문학계에서 실제 자신보다 더 큰 찬사를 받는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사실을 끝까지 숨겼으며 죽기 전 남긴 유서를 통해 그 정체를 밝혀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그는 전 부인 세버그가 숨진 후 1년 뒤인 1980년 12월2일 자신의 입안에 권총을 쏘고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