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공의 4년차이던 2002년, 짬 날 때마다 인터넷에서 대통령 선거 관련 기사를 찾아 읽곤 했다. 사석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더니 그런 나를 두고 지도교수께서는 “정신과의사가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 어떻게 하려고…”라며 혀를 차셨다. “정신과의사의 자질과 정치적 견해가 무슨 상관인가요”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못했다. 그 후론 웬만하면 정치이야기는 안 한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는 더욱더 말하지 않게 됐다.
며칠 전 한 신문사 기자에게서 “OOO 후보의 로봇개 논란과 관련해 취재 중인데 자문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골드워터 룰이 신경 쓰여서가 아니다. 정신과의사로서 경고의 의무를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논란거리에 말을 보태기 싫어 회피하려 한 것도 아니었다. 뉴스에서만 보고 직접 대면한 적 없는 특정 정치인의 정신세계에 대해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정신장애를 정의하는 기준은 있지만 암을 진단하는 조직검사 같은 확실한 검사법이 정신의학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리검사를 하지만 이건 진단의 보조수단이고 참고자료일 뿐이다. 진단에는 정신과의사의 경험에서 비롯된 느낌,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임상적 판단이 제일 중요하다. 인간 행동이 정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신의학적 판단에는 오류의 가능성이 일반인이 예상하는 것보다 클 수밖에 없다.
수련을 받을 때 지금은 은퇴하신 원로 교수께 자주 들었던 가르침은 “환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마음을 잃지 마라”였다. 가끔 사회현상이나 공적 인물의 심리를 해석한답시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고 나면 나는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린 학생처럼 죄책감이 든다.
정신의학에 근거해서 문제가 있다면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듀크대학의 조넌선 데이비드슨 교수팀은 조지 워싱턴부터 리처드 닉슨까지 1776∼1974년 사이에 재직했던 미국 대통령 37명의 정신건강을 조사했다. 대통령 전기와 일대기, 의료기록, 언론기사를 토대로 정신장애 진단기준에 부합하는 문제가 있었는지를 평가했다.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정신과전문의 3명의 판단이 일치할 때만 정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조사 대상이 된 미국 대통령의 절반(49%)에서 한 가지 이상의 정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이 24%, 불안장애에 해당하는 경우는 8%였다. 조울병을 가진 대통령이 8%, 알코올 남용·의존도 8%였다. 대통령 재직 중에 정신장애가 발병했던 것으로 판단되는 사례도 27%에 이르렀다.
갈등이 극에 달한 부부가 상담하러 찾아왔다. 흥분해서 서로의 말을 끊어가며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고 난 뒤에 남편은 아내를 향해, 아내는 남편을 향해 “저 사람 성격이 이상한 것 같아요”라고 주장하며 내게 물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떤지 판단을 좀 내려주세요.” 비슷한 사례를 접할 때마다 “잘 모르겠어요”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전문가로서 권위는 살지 않아도 갈등을 키우지 않으려면 그렇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도 인간인지라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크고 작은 정신적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캐내어 정신질환의 딱지를 붙인 뒤에 옳으냐, 그르냐 언쟁하느라 우리 사회가 더 격렬하게 토론해야 할 사안을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