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이다. 지방 대학에 계시던 어느 노교수님을 방문했는데, 그분이 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게 하면 리듬에 맞춰 잘 읽는 학생이 나오는데 그 학생은 틀림없이 글도 잘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뜸 “교수님, 그렇게 일반화하기란 좀…”이라고 반론을 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좋은 문장은 소리와 연관이 있어 리듬을 타는 학생이 문장을 잘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교수의 생각이다.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그 말은 해명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사실 말하기와 쓰기가 운율 속에서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도 그렇고 서양도 그러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만 보더라도 문자가 아니라 오로지 낭송으로 지어져 후대에 전승된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을 보면 학생들은 교실에서 책을 보지 않고 구전적 암송을 반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에 주된 교육방식이 시를 암송하고 이를 학습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근대까지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소리 높여 암송을 하면서 외웠다. 이야기는 운율을 실어 암송되었고, 그 암송된 내용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이미지로 환원되어 전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