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50가지 동물/제이콥 필드/이한이 옮김/반니/1만6000원
그런 이집트가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도 고양이 때문이었다. 기원전 525년 페르시아제국의 캄비세스 2세는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에 침공했다. 이때 페르시아군은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숭배한다는 점을 이용했다. 군대의 전면에 고양이를 앞세우고, 병사들은 고양이를 팔에 안은 채로 진군했다. 심지어 방패에는 고양이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집트인들은 그런 페르시아군을 상대할 수 없었다. 수도 멤피스는 순식간에 점령당했고, 이집트는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생태계의 관점에서도 역사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관점에서 서술됐을 뿐이다. 기록에 남지 않은 영역에서 인간보다 많은 수와 종류의 동물이 살고 있고, 이들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신간 ‘세계사를 바꾼 50가지 동물’은 역사학자 제이콥 필드가 역사의 변곡점에서 동물들의 활약을 짚어본 책이다. 동물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이며, 이를 간과했을 때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개는 인간과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서 인간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으로 번식하고 진화를 거듭했다. 개의 다양한 모습에도 지구 곳곳에서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이었다는 흔적이 발견된다.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유디스티라 왕은 천상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개를 버리라는 요구를 거절하는데, 이것이 천계로 들어가는 자격으로 평가받는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전쟁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충견인 아르고스만 주인을 알아본 것으로 전해진다.
개가 인간의 필요에 의한 대상으로 여겨졌다면, 뱀은 인간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이중적으로 여겨졌다. 흔히 악을 대변하는 동물로 보지만, 동시에 창조와 치유의 상징이기도 하다. 뱀을 악한 존재로 보는 대표적인 기록은 창세기에 있다. 이브가 금지된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는 장본인이 바로 뱀이다. 이 사건으로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뱀은 땅을 기어 다니라는 저주를 받게 된다. 반면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뱀은 배움의 신 케찰코아틀로 그려진다. 케찰코아틀은 흰 피부에 달개를 단 형상을 하고 있는데 조화와 균형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아즈텍 신화에서는 세계가 창조되기 전 대홍수에서 뱀이 바다 괴물을 무찌른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흔히 바퀴를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발명으로 여기지만, 사실 바퀴가 굴러가게 하는 것은 동물이었다. 동물의 동력을 활용하기 위한 고민 끝에 바퀴가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초기 수레와 마차는 주로 소가 끌었다. 소는 힘이 세고 튼튼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동성이 뛰어나지 못했다. 이 부분을 보완하는 동물이 말이었다. 속도와 끈기를 모두 가진 말은 인간이 무거운 짐을 싣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말이 가축의 범주에 들어간 것은 족히 5000년이 넘는다.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고기와 우유를 얻기 위해 기르던 것이 이동 수단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기원전 3000년쯤의 말의 두개골에는 치아가 마모되어 있는데, 말에 고삐를 매어 탄 것으로 추정된다. 말이 가장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군사 분야다. 13세기 몽골이 고려에서 러시아 서부까지 확장한 것은 말을 통한 기동성이 주효했다.
책은 인류가 일궈낸 것이 사실은 동물의 힘을 빌려 이룩한 것임을 보여준다. 승자만의 기록에서 동물을 간과하는 것이 어떤 부작용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서도 환기시킨다. “인간의 이득만을 위해 자연을 이용한 오랜 행태가 우리 자신은 물론 동물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인류는 전 대륙에 걸쳐 번성하고 퍼져나가면서 지워지지 않는 자취를 남겼다. 인류와 동물이 지속가능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동물과 환경을 더 많이 이해하고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