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지미사일이 없는 무기체계(KF-21)가 나온다면 상당 기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부분도 같이 고려하겠다.”
지난달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장. 국정감사에 출석한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은 한국형전투기 KF-21의 지상 공격 능력 문제에 대한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강 청장이 언급한 것은 KF-21에 장착될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LIG 넥스원과 함께 탐색개발을 진행해 왔고, 지난 9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된 미사일 시험발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보면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은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을 둘러싼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개발 주도권 바뀌나…ADD 역할론 ‘솔솔’
4.5세대 전투기인 KF-21의 전략적 타격능력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에 집중되어 있다.
F-15K에 쓰이는 타우러스 미사일처럼 500㎞ 이상 떨어진 지상 표적을 파괴할 수 있는 미사일을 KF-21이 갖춘다면, 전략적 차원에서의 억제력 확보가 가능하다.
정부와 군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국내에서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2016년부터 ADD 주도로 탐색개발이 이뤄졌다.
탐색개발을 하면서 체계개발 단계 전환 여부 논의가 조심스레 나오던 지난해 6월, 방위사업청은 국방연구개발 주도권을 ADD에서 민간 업체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형수직발사체계Ⅱ, 경어뢰 성능개량, 130㎜ 유도로켓,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은 업체 주관 사업으로 변경됐다.
이후 경어뢰 성능개량과 한국형수직발사체계Ⅱ, 130㎜ 유도로켓 사업은 후속조치가 진행됐지만,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관련 후속 절차가 이뤄진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 주관기관이 ADD로 바뀔 가능성이 정부와 방위산업계, 군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ADD보다 기술력이 부족한 민간 업체가 개발을 주도할 경우 개발기간 연장 및 비용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체계개발 이후 미사일 양산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9월 ADD의 미사일 시험발사 당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지상 표적에 명중하는 모습이 공개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만 밝혔다.
방산업계는 정부와 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모양새다. ADD가 개발을 주도해도 연구개발 성과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시제품은 방산업체가 만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KF-21에 탑재되는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는 ADD가 개발했지만, 시제 제작은 한화시스템이 맡았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시제품 제작 경험을 얻는 업체는 최소 5000억원 규모로 평가되는 양산사업 수주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전투기 탑재 미사일을 생산하는 업체는 세계 시장에서 신뢰도 향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의 의사결정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독자 개발이냐 공동 개발이냐…득실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 방식과 관련, 독자 개발과 공동개발 방식이 거론된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2028년까지 개발하는 것이 현재 목표다. 미사일을 탑재할 KF-21은 기본적인 임무수행이 가능한 블록1이 2026~2028년 생산되고, 공대지 능력이 추가된 블록2가 2028년~2032년 생산된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체계개발을 거쳐 2026년~2028년 KF-21 블록2 탑재를 염두에 둔 추가무장시험을 거친다. 내년에 체계개발에 착수한다고 가정해도 4년 안에 미사일을 만들고, 2년 동안 KF-21과 미사일을 체계통합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촉박한 일정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재즘(JASSM)을 만드는데 13년, 독일이 타우러스 개발에 14년이 걸렸다는 점을 들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핵심기술 개발도 변수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먼거리를 날아가 표적을 파괴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무기다. 수m가 넘는 두께를 지닌 콘크리트 벙커 내부에 있는 목표물을 부수고, 필요하다면 지하시설도 타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화 콘크리트나 지하시설을 뚫는 탄두와 시커(탐색기) 기술이 필수다. 최대 6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를 뚫는 위력을 지닌 타우러스 미사일은 탄두가 관통탄두와 침투탄두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시설물을 공격할 때, 관통탄두가 폭발하면서 침투탄두를 지표면 아래로 침투시킨다. 신관이 지하 시설물의 빈 공간을 인식하면 침투탄두의 폭발을 늦춘다. 이후 파괴할 지점에서 침투탄두를 정확하게 폭발시킨다.
미사일이 표적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선택해야 할 하강 각도와 속도 등의 기술도 난제다. 각도나 속도에서 오차가 발생하면 강화 콘크리트를 뚫지 못한다.
최적의 하강 각도와 속도를 내기 위한 기술을 얻으려면, 상당한 수준의 시험발사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시험발사를 위한 국내 기술적 기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ADD 일각에서는 “100% 독자 개발한다면 2030년대 초에 개발이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려가 현실이 되면, KF-21 양산 종료 시점에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이 완료되는 셈이다.
기존 개발 일정으로도 KF-21 전력화 이후 상당 기간 전투기에 미사일을 장착할 수 없다는 지적까지 더해지면, 문제를 빠르게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해외 업체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시험평가나 감항인증 등과 관련된 노하우를 습득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같은 틈새를 본 독일 타우러스시스템스는 한국에 공동 개발을 제안하고 있다. F-15K에 쓰는 타우러스 미사일보다 사거리와 파괴력을 높이면서 크기를 줄인 타우러스 350K-2가 그것이다.
1990년대 말 스웨덴 그리펜 전투기 탑재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타우러스 미사일 소형화 연구를 했던 타우러스시스템스는 타우러스 350K-2 연구개발을 진행, 국내 방산업계나 연구소 등과 공동개발을 논의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방산업계에서는 개발 기간 단축 여부가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업체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기술적 난제를 신속하게 해결한다면, KF-21 전력화에 차질이 빚어질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외국과의 공동개발을 통해 미사일 개발 완료 시점을 얼마나 앞당길 수 있느냐에 따라 파트너십 여부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개발 및 양산비가 8000억원이 넘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사업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비용 대비 효과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사업의 공식 명칭인 ‘KF-21용 타우러스급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에서 잘 드러난다.
명칭에서 보듯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KF-21 외 F-15K나 F-35A 등에는 사용이 어렵다. 대량 생산이 쉽지 않은 이유다.
현재 기준으로 미사일의 생산 예정 수량은 200여발. 대당 단가가 타우러스보다 훨씬 높다. FA-50 탑재를 위해 추진중인 중거리 공대지미사일 사업까지 더해지면 비용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 국가의 전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스톰 쉐도우는 영국 공군 토네이도 전투기, 프랑스 스칼프는 라팔 전투기에만 쓰인다. 미사일-전투기 체계통합이 어렵고,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관련 기술이 다양한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 기술이 아닌 점이 미사일 사용자 확산의 걸림돌이라는 평가다.
반면 타우러스는 독일 공군 토네이도와 타이푼 전투기, 스페인 공군 타이푼과 F/A-18 전투기, 한국 공군 F-15K에 쓰인다. 미국산과 유럽산 전투기에서 모두 운용이 가능한 셈이다.
한국도 KF-21 외에 다양한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위해 관련 경험을 갖춘 해외 파트너를 물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군 당국의 최종 결정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