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하순~11월 초에도 기온 높아 단풍 절정 시기 늦어지고 짧아져 따뜻한 가을로 해충·질병도 확산 온난화 해법 찾기 위해 노력해야
노란색과 빨간색 단풍이 산을 덮었다. 온대지역 나무 중 가을에 잎을 붉게 바꾸는 나무는 약 10%, 노랗게 바뀌는 나무는 약 15% 정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어디라도 단풍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지금도 짧게만 느껴지는 단풍 시기가 기후변화로 인해 더 짧아질 거라고 한다. 은행나무 잎이 노란색으로 바뀌는 건 기온이 낮아져 잎 속의 녹색 엽록체는 파괴되고 숨어 있던 노란색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풍나무처럼 잎이 붉게 물드는 건 기온이 낮아져 녹색 엽록체와 노란색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모두 파괴되고 붉은색인 안토시아닌 색소가 잎에서 새로 합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온이 생육 최저온도인 섭씨 5도 이하로 떨어져야 단풍은 물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10월 하순이나 11월 초까지 기온이 높게 유지되면 녹색 엽록체가 파괴되지 않아 단풍 시기는 늦어지고 단풍이 물들더라도 짧은 시간 후에 떨어진다. 이미 우리나라의 가을철 단풍 절정 시기가 10년마다 3.7~4.2일이 늦춰지는 경향을 보인다.
단풍 시기가 늦어지는 것같이 기후변화로 인해 여러 생물이 영향을 받을 텐데 가을철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많지 않다. 지금까지 가을이 온대지역에서는 동식물의 성장과 번식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시기라고 생각해 기후변화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가을에 기후변화를 연구한 숫자가 봄에 연구한 숫자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가을을 기후학적으로 정의하면 일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지 않는 시기를 말한다. 물론 일평균 기온이 5도 미만인 겨울보다는 따뜻하다. 이에 기후변화로 가을에 기온이 높게 유지된다는 것은 일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이긴 하지만 춥지 않은 일수가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일평균 기온이 20도 이상인 여름이 길어지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가을철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찾아보면 외래생물과 해충, 질병의 확산이 눈에 띈다. 외래생물은 가을과 겨울의 낮은 기온 때문에 살아남지 못하거나 살아남더라도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갈 힘이 부족하다. 그런데 가을이 따뜻해지면 외래생물의 생존 가능성이 커지고 에너지도 충분히 축적해 다음 해에 우리나라 토착생물이 사는 지역을 빼앗는다. 해충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가을 때문에 겨울철 휴면 시기가 늦어져 가을에 세대를 한 번 더 반복하거나 알을 낳아 숫자를 늘린다. 늘어난 해충은 당연히 다음 해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가을철 기후변화가 사람의 건강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따뜻한 가을철 기온으로 진드기와 모기가 늦가을까지 활동하게 된다. 가을에는 진드기와 모기가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가 더 강력해져 야외활동이 잦은 시기에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미국에서는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가 늦가을까지 활동해 많은 사람을 감염시켰다. 사계절이 뚜렷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 좋은 온대지역이지만 그만큼 기후변화의 영향도 계절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지난 10월 31일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영국에서 진행 중이다. ‘기후악당’이라고 불리던 우리나라도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와 약속해 악당 이미지를 겨우 벗었다.
이번에 공표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 단위의 산업구조 개편이나 에너지 정책 변화 등이 필요하다. 과거 개인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충분히 감축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개인이 할 일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가 우리 모두에게 도덕적 책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개인이 많아져 국가정책이 잘 진행되는지 감시만 해도 된다.
가을이 저만치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지만 단풍을 조금 더 길게 즐기고 싶다면 우리도 마음을 ‘단디’(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