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그 개인이 태어난 문화가 가진 언어는 일방적인 관계로 보인다. 태어난 아이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언어를 배우게 되고, 그 언어는 아이의 사고 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한 개인이 한 언어의 생존과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예가 세종대왕이다.
물론 세종대왕은 한국어라는 언어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표현되는 글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그 노력은 왕 혼자서가 아닌, 집현전 학자들과의 공동 노력이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결정하고 추진하지 않았다면 한국어는 아직도 한자에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지 모른다. 디지털 시대에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행운도 크지만, 우리가 중국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면 자문화 중심주의를 추구하는 중국이 한국 문화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셰익스피어는 ‘햄릿’ 같은 유명한 작품을 쓴 극작가이자 시인”이라고 설명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가 영어라는 언어에 끼친 영향을 가늠하기 힘들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팩폭(팩트폭행)’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사용한다. 그런데 이 표현을 우리가 50년 후에도 사용할까. 지금 60, 70대 이상은 ‘어깨’, ‘이빨’ 같은 말은 각각 깡패와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로 알고 있지만, 젊은 층은 사용하지도, 들어본 적도 없는 표현이다. 그런데 누군가 유행어를 잔뜩 만들어냈는데, 너무나 절묘하고 처음 들어도 바로 이해하기 때문에, 더 좋은 표현을 찾기 힘들어서 수백년 후에도 계속 사용된다고 생각해보라. 그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이 셰익스피어다.
가령 ‘break the ice’라는 표현을 보자. 처음 만난 사이에 어색함을 없앤다는 이 표현은 너무나 적절해서 요즘은 한국 사람들도 ‘아이스브레이킹’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표현을 차가운 마음을 녹인다는 의미로 처음 등장한 것이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다. 영어 수업시간에 ‘suddenly(갑자기)’와 같은 의미의 숙어로 배운 ‘all of a sudden’도 같은 작품에 처음 등장했다. 형용사인 sudden을 명사처럼 취급한 시적인 표현인데,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모두가 이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4세기가 넘은 지금도 사용된다. 한때 한국 TV를 장악했던 ‘개그콘서트’에서 만들어낸 표현들이 2400년대에도 전혀 낯설지 않게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 밖에 ‘heart of gold (고결한/친절한 마음)’ ‘one fell swoop(단번에, 일거에)’ ‘too much of a good thing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good riddance(없어지니 속이 후련하네)’ ‘love is blind (사랑에 눈이 멀다)’ ‘send him packing (쫓아내다)’ ‘wild good chase(부질없는 노력)’ ‘to come full circle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다)’ 같은 것도 영어권에서는 요즘도 일상 대화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표현들이지만 그 기원은 결국 셰익스피어가 쓴 연극 대본에 있다.
셰익스피어는 관용구만 만든 게 아니라 단어도 만들어냈다. 영어에서 ‘토하다’는 vomi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일상에서는 캐주얼하게 puke라는 말을 더 쉽게 사용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셰익스피어가 ‘뜻대로 하세요’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록된다. 단어도 한국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스웩(swag)’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힙합 문화를 통해 들어와 허세, 스타일 등의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이 단어는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에서 swagg'ring (swaggering)이라 사용한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오만한, 활개치는’의 의미로 사용된 이 단어는 2000년대에 들어와 제이지, 솔자보이 같은 뮤지션들이 가사에 사용하면서 힙합문화에 유입되었고, 이제는 비영어권 문화에서도 이해하는 단어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주장까지 나올 만큼 너무나 많은 표현들이 셰익스피어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정말로 그가 만들어낸 게 맞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처음 대본에 넣은 이런 표현들은 그의 연극이 큰 인기를 끈 후에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게 셰익스피어가 영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