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와 분열, 극단주의에 질식하는 한국 사회 평범한 시민들, 희망의 공동체 향한 투쟁 계속
오늘날 한국 사회는 관용과 연대를 잃어가고 있다. 적대와 분열, 증오와 혐오, 경멸과 조롱의 언어에 질식당하는 중이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이등시민으로 얕잡는 선민의식, 어떻게든 상대 목소리를 배제하려는 배타성, 평범한 시민의 도덕 감정에 대한 무시, 약자의 삶에 대한 무관심 등이 퍼져가고 있다. 이런 시대는 우리를 오랜 물음 앞에 서게 만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평범한 미덕의 공동체’(원더박스 펴냄)에서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기술 진보의 불가피성, 민주주의의 확산, 자유주의의 승리라는 서사가 가난한 사람과 빼앗긴 사람에게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장밋빛 서사 대신 위태로운 공공 공간을 차지하려고 좌파 또는 우파의 포퓰리즘 같은 새로운 서사들이 경쟁하면서 사회를 둘로 쪼개 버렸다는 것이다.
산산조각 난 세계가 가져온 급격하고 불안정한 변화가 강자들한테는 권력의 꿀통을 휘저을 기회로 보였겠으나, 약자에게는 혼돈을 이해하고 끔찍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일으켰다. 저자는 ‘카네기 국제문제윤리위원회’ 의뢰를 받아 2013년부터 3년 동안, 로스앤젤레스, 리우데자네이루, 프리토리아, 사라예보, 후쿠시마 등의 빈민촌, 난민촌 등을 돌아다니면서 재난의 시대에 평범한 시민의 삶에서 ‘윤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탐색했다.
저자에 따르면, 양극화가 심해지고 불평등이 번지며, 정체성 정치와 극단주의가 유행하는 시대에 다수의 시민은 ‘평범한 미덕’이라는 도덕 언어에 발맞추어 살아갔다. 아무리 삶이 힘겹고 잔혹할지라도 사람들은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선량한 삶을 살고자 했다. 생존에 매몰되는 대신 되도록 올바른 일을 행해 자존감을 유지하고, 가족, 친구, 이웃, 동료 등과 잘 어울려 살기를, 즉 평범한 미덕을 발휘해 더 신뢰받고 더 사랑받으면서 생활하기를 바랐다.
평범한 미덕의 번영과 확산은 좋은 공적 제도에 의존한다. 폭정과 독재도 이를 제거할 수 없으나, 자유 속에서 더 크게 번성한다. 경찰과 판사와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으면 더 쉽게 퍼져나가고, 국가 등이 도우면 ‘우리’가 확장되면서 난민이나 이민자에게도 쉽게 열린다. 불행히도, 세계화 시대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조차 국가에 대한 신뢰와 공적 제도에 대한 믿음을 떨어뜨리고 불의를 퍼뜨렸다.
그러나 미덕을 행하는 자존감이 있기에 가장 가난한 사람조차 ‘나는 중요하다, 쓰레기가 아니다’라는 목소리의 평등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말하기의 평등을 들리기의 평등과 혼동하지 않을 만큼 현명했고, 기회의 평등이나 결과의 평등에 속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지만, 자기들 목소리가 더 존중되어야 한다고 간절히, 격렬히 외쳤다. 따라서 이들은 부패와 악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분투를 시작했다. 때때로 묵과하는 듯 보이지만, 불의가 명백하고 모욕적이고 존엄을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껴지면 불길처럼 봉기했다.
세상은 포식자가 지배하는 밀림일지 몰라도, 평범한 시민들은 탐욕, 부패, 불관용, 증오, 복수 등에 맞서서 투쟁하면서 타인과 결속을, 희망의 공동체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회적 존재인 우리의 생존과 성공은 오직 미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동자에 비친 얼굴에 떳떳해지는 것은 약자일수록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지금 우리 사회의 우선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