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서울로 돌아왔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 원작을 단 한 부문도 놓치기 아쉬운 아름다운 노래와 춤으로 무대에서 되살린 이 대작의 ‘중심추’는 다니엘 라부아. 1998년 초연 무대에서 금지된 사랑에 번민하는 사제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원조 ‘프롤로’다. 파리 초연과 런던 공연 이후 지난해 우리나라 공연을 통해 18년 만에 노트르담 드 파리 무대에 다시 섰다.
이번 공연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6일 숙소인 공연장 인근 호텔에서 세계일보를 만난 그는 “프롤로라는 인물은 ‘노트르담 드 파리’에 나온 인물 중에서 가장 복합적인 캐릭터”라며 “처음 프롤로를 연기했을 때가 마흔 아홉 살이고 지금 일흔둘인데 그 사이 프롤로도 계속 변화했다. 그러다보니 연기하는 방식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다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운 후 음악은 그의 길이었다. 1973년 자신의 노래를 처음 녹음한 후 가수로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Ils s’aiment·1984)’는 지금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인들이 자주 부르는 ‘프랑스 국민가요’다. 사십대엔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공화국 기사로 서훈되는 영예를 얻었다.
가수로서 더는 바랄 게 없는 그 무렵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가수와 작곡가로 30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빅스타’였죠. 그렇게 사십 대 중반이 됐는데 워낙 록스타나 가수로서 삶이 익숙해서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시점이었습니다.”
마침 찾아온 작품이 ‘노트르담 드 파리’. 오랜 친구인 뤽 플라몽동(작사가)이 어느 날 “신부가 되지 않겠냐”며 전화를 걸어왔다. “한번 들어보라. 너에게 줄 역할이 있다”며 보내준 카세트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 찼다. 라부아는 바로 출연을 결정했지만 이처럼 흥행작이 될지는 몰랐다. 오히려 당시 유행 스타일과 달라 금세 망할 줄 알았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마치 ‘산불’ 같았어요. 알아서 소문이 퍼져나가고 빠르게 흥행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새로운 분야이니 한번 해봐야지 했는데, 그게 프랑스 뮤지컬을 통틀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됐죠. 제가 얼마나 운 좋은 뮤지컬 배우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히트로 올해 72세가 되기까지 1000번 이상 ‘노트르담 드 파리’ 무대에 오른 그는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 설 계획이다.
“프롤로로 천번 이상 무대에 서는 솔직한 마음이요? 정말로, 정말로 솔직히 답하자면, 매번 노래를 부를 때마다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일 년이면 백일 정도 프롤로로 공연하는데 매번 운 좋게 객석은 꽉 차있고 즐거워하는 게 그들의 얼굴에서 보입니다. 연기하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잘 알고 있기에 단 한 번도 지겨웠던 적 없이 매번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12월 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