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밥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이 밥 먹여주는 기적을 매일 체험해요.”
경기도 성남시에는 노숙인과 탈가정 청소년을 지원하는 ‘안나의 집’이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건 푸른색 눈동자의 이탈리아인 김하종(64) 신부다. 김 신부는 1990년 한국에 처음 온 뒤로 30년 가까이 봉사하고 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 한국말도 서툴렀던 그는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노숙인이 급증하는 것을 보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하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안나의 집이다. 매일 750명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배식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있다.
김 신부는 먼 이국 땅에 온 이유를 “상처를 조건 없는 사랑으로 치유해 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내 삶을 내놓으며 이웃들의 상처를 품기 위해서다. 버림받은 이들, 가난한 이들, 고독한 노인들, 가정으로부터 도망 나온 청소년들은 예수님의 피 흐르는 상처다. 오늘도 변함없이 예수님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게 해주신 것을 찬미한다.”
김 신부는 급식소를 찾아오는 어르신들에게 언제나 허리 굽혀 공손하게 인사한다. 한번은 ‘수염을 깎으라’는 어르신의 말에 기르던 수염을 모두 깎았다. 그의 그런 행동이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전해지길 바라면서다. “안나의 집에 찾아오는 노숙인들은 그저 불쌍한 존재가 아니다.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가진 것이 많든 적든 하늘 아래 같은 인간이다. 나는 그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집’을 지킬 것이다. 이곳을 밤낮으로 지키는 문지기이고 가난한 이들의 충성된 종이니까.”
물론 그에게도 삶의 고단함이 있다. ‘매일 봉사하는 삶이 지치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할 일이 많다. 신경 쓰고 걱정할 일도 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모든 것을 떠나 ‘피정’한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예수님과 함께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 피정을 통해 살아갈 힘을 되찾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에 드리는 한 시간의 기도가 하루를 살게 한다. 매일 하는 기도와 한 달에 한 번의 피정이 삶의 기초이자 버팀목이다. 일상이 이렇게 견고한 버팀목 위에서 펼쳐진다.”
안나의 집은 무료 급식소로 알려져 있지만, 노숙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리스타트 자활 사업단’도 병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종이봉투 만드는 일을 꾸준히 하면 월 18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 “이곳에서 꿈이 화가인 한 일용직 노동자는 일거리를 잃고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재활을 꿈꾸며 안나의 집에 들어왔다. 주거가 안정되자 길가에 버려진 종이상자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 길거리 풍경이 캔버스 위의 작품으로 탄생했고, 이 작품을 구매하는 사람도 생겼다. 화가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에게 안나의 집은 단순히 한 끼 해결을 돕는 급식소가 아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두 번째 인생을 열 수 있는 곳.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발걸음을 한발 내딛는 곳. 삶이 허무하게 버려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곳이 안나의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