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이 둥실 떠있는 ‘큰연못정원’에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진다. 청초한 노랑 꽃창포 한 무리와 연분홍 폰티악만병초가 어우러지고 신비로운 연보랏빛 알리움까지 더하니 마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밀의 화원에 선 듯하다. 아시아 최초로 세계수목원협회가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한 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수목원에 들어서자, 머리를 짓누르던 번잡한 고민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가슴은 자연의 싱싱한 초록으로 물든다. 천리포수목원을 이끄는 이는 ‘푸른눈의 한국인 의사’이자 ‘순천 인씨 시조’ 인요한(62·미국명 존 린튼) 연세대 의료원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주중에는 사람을 돌보고 주말에는 나무와 꽃들을 돌보니 대를 이어 한국에서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돌봐야 하는 집안 내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 민병갈 설립자와 부친의 만남
인 이사장은 작고한 부친 인휴(휴 린튼)와 민병갈 설립자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해 일본군과 싸운 부친은 한국전쟁 때도 미 해군장교로 인천상륙작전 후에 참전했는데, 두 분은 아마 전쟁 중에 만나 우정을 쌓은 것 같아요. 1961년 조부가 부친께 1만달러를 남겼는데, 그 재산을 모두 민병갈 설립자에게 맡겨 투자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니 친형제 이상으로 친분이 대단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제가 5남 1녀의 막내인데, 부친께서는 선교사 월급으로 아이들을 모두 교육시킬 재간이 없으니 전 재산을 맡기면서 잘 키워달라고 요청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민병갈 설립자는 제게 삼촌과 같은 분이죠.”
인 이사장 가문의 대를 이은 한국 사랑은 유명하다. 부친은 어머니와 함께 전남 섬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했는데, 순천에 큰 수해로 결핵이 유행하자 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워 의료 봉사를 펼쳤다. 조부인 인돈(윌리엄 린튼)은 21살이던 1912년 최연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독립운동을 펼쳤고, 대전대학(현 한남대) 초대 학장을 지냈다. 또 인돈의 장인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은 미국 북장로교 소속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의 요청으로 1895년 호남지역에 파견됐던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이며 ‘호남 선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부친과 설립자 모두 한국과 한국 사람을 깊이 사랑했던 같아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지만 가난한 삶 속에서도 한국인들의 가능성을 봤다고 해요. 민병갈 삼촌을 만날 때마다 ‘가난하다고 이 나라 무시하지 마라. 우리가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이런 얘기를 한 천번은 들은 것 같네요.”
# 사람과 나무를 돌보는 푸른 눈의 한국인
인 이사장은 이런 설립자와의 인연으로 천리포수목원 개원 초기부터 이사를 맡아 운영에 참여해 왔다. 그만큼 수목원 구석구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시아 수목원 중 나무 종류가 가장 많고 족보가 제대로 정리돼 있어요.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목련만 870종에 달한답니다. 바닷가나 연못도 아름답지만 목련이 피는 4∼5월 목련의 바다에 앉아서 음미하는 시간이 가장 좋아요.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목련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며 피는 모습은 천국의 한 장면 같답니다. 6∼7월에는 각양각색의 수국과 수련들이 시원스런 꽃을 피우고, 솜사탕 같은 꽃을 단 노루오줌, 향기가 그윽한 여름목련 태산목도 감상할 수 있어 계절마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에요.”
지난 3월 이사장을 맡자마자 외부 기업에 경영진단을 받아 수목원 경영의 내실을 다지는 데도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재무구조를 튼실하게 만들어 설립자가 바라던 공익을 위한 수목원으로 키워 나가기 위해서다. “이사로 수목원 운영에 참여하는 동안 설립자 취지를 따르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설립자의 유언이 훼손되지 않도록 끝까지 버텼답니다. 40명이 넘는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수목원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천리포, 만리포 주민들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수목원이 되도록 주민들과 활발한 교류도 합니다.”
천리포수목원은 사립수목원이고 공익재단이라 사실 경영에 어려움이 있다. 환경부나 산림청 등에서 정부 보조금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산이 40억원이 좀 넘는데 빠듯한 살림이라 흑자를 내기 쉽지 않지만 천리포, 만리포는 물론, 우리나라의 귀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공익을 위한 수목원이라는 설립자의 이념을 잘 살려서 우리나라, 나아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수목원으로 발전시켜 나갈 작정이랍니다.”
설립자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사립수목원 최초로 식물 전문 도서관인 ‘민병갈식물도서관’도 개관했다. 에코힐링센터 1층에 조성한 식물도서관에는 전문도서와 설립자가 해외 수목원 및 식물학회와 직접 교류하면서 수집한 도서, 사진, 테이프, 기록문서 등 모두 1만7000점이 비치됐다. “KB금융그룹의 기부로 세운 식물도서관은 식물 분야 전문가에게는 학술연구를 돕는 장이자 일반 관람객에게는 식물 정보를 얻고 독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앞으로 모두 5만점을 모을 계획인데, 식물학을 전공한 분들이 공부하면서 학문적인 교류를 통해 식물학계가 발전하는 데 밀알이 됐으면 좋겠네요.”
# 후손을 위해 나무를 심는 마음
인 이사장은 2012년 3월 특별귀화 1호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대한민국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이다. 교동 인씨 문중에 자신을 족보에 넣어달라고 요청했더니 대환영한다며 반겼다. 하지만 2∼3개월 만에 전국의 인씨들에게 동의 사인을 받아야 했기에 포기했다. 대신 고향을 기리기 위해 ‘순천 인씨’를 만들었고, 법원이 이를 허가해 순천 인씨의 시조가 됐다. 인 이사장은 부친이 198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작고한 뒤 부친 친구들이 모은 기금으로 응급처치 시설을 갖춘 전문 구급차를 국내 최초로 제작해 1993년 순천소방서에 기증했다. 또 미국 텍사스에서 외삼촌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을 모셔와 응급구조 교육도 진행했다. 그의 이런 노력으로 응급구조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움직임이 전국으로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또 북한의 결핵퇴치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쳐 300억원 이상을 모금하고 유진벨재단을 통해 환자 30만명을 치료했다. 그는 이런 공로 등으로 2005년 국민훈장 모란장, 2014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인 이사장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대에 수목원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공기 좋은 곳에서 걷거나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심신의 휴식으로 건강을 지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되죠.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쌓였는데 힐링장소로 수목원을 적극 추천해요. 수목원은 단지 꽃과 나무를 감상하는 곳을 넘어서 라이프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답니다.” 인 이사장은 더 많은 사람들이 천리포수목원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18만평 중 2만평 정도만 공개하고 있는데 우리끼리만 알면 뭐 해요. 조심스럽지만 식물에 애착이 큰 분들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나마 공간을 더 개방하려고 해요. 수목원이 소유한 낭새섬에도 나무를 꽤 심었는데 썰물 때 걸어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네요.”
그는 손자·손녀를 위한 마음으로 천리포수목원을 가꿔갈 작정이다. “나무를 심는 마음은 나를 위한 것도, 자식을 위한 것도 아니에요. 손자, 손녀 등 우리의 후손들을 위한 것이죠. 건물과 공장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을 회복시키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큰 가치를 지닙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천리포수목원을 잘 보존하며 가꿔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