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단풍이 낙엽이 되고 찬 기운이 옷깃으로 스며드는 이맘때 언론사 문화부는 신춘문예로 분주하다. 한 해 동안 글밭을 가꿔온 문청(文靑)들의 원고 제출과 문의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다음 달 초순인 마감이 다가오면서 응모자들의 문의로 부서 전화통은 불이 난다. 해마다 이즈음 전화를 해오는 이가 있다. 전직 공무원인 60대 중반 여성이다. “정년 후에 시의 세계에 눈을 떠 열심히 필사도 하고 창작교실도 다니며 시를 쓰고 있다. 5년간 응모했는데 번번이 낙방했다”고 한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한숨이 깊다. “나이 든 이는 뽑지 않나. 심사위원들이 젊은 작가를 선호하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달리 할 말이 없어 “열심히 쓰시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나 마나 한 위로를 건넸다.
언제부터인가 문청들의 등단 마당인 신춘문예에 노년층이 대거 문을 두드리고 있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퇴직 등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긴 이들이 젊은 시절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닦은 문재(文才)를 인정받기 위해서다. 실제 늦은 나이에 등단해 눈에 띄는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시인 박미산은 쉰넷이던 2008년 시 ‘너와집’으로 본지 신춘문예에 당선돼 요즘은 ‘마음을 여는 시’ 코너에 정기 연재하고 있다. 고희를 훌쩍 넘긴 이가 시와 동시 등으로 지역신문 신춘문예 당선된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결혼 후 살림에 묻혀 살다 1970년 마흔의 나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으로 당선될 때 ‘늦깎이 데뷔’라며 회자됐는데, 요즘 40∼50대의 등단은 더는 문단의 화젯거리가 못 된다.
‘시창작교실’을 운영하는 시인 이정하는 “수년 전만 해도 20∼30대가 많았지만, 요즘은 50∼60대도 많이 수강한다. 시는 자신과 주변을 생각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장르다. 마음도 맑아지게 하는 만큼 노년기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실버세대의 글쓰기 진출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한국문인협회 이혜선 부회장(시인)은 이런 ‘후문학파(後文學派)’의 등장은 새삼스럽지 않은 문단 현상이라고 말한다. 후문학파는 ‘선인생 후문학(先人生 後文學)’에서 비롯된 말로, 생업을 은퇴한 후 문학에 뜻을 두는 이들을 가리킨다. 인생 1막 시절 돈벌이하고 자녀를 건사하다가 퇴직해 젊은 시절 지녔던 문학의 꿈을 좇는 실버 문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