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미국과 한국의 의료체계

미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분과 얼마 전 연락이 닿았다.

“코로나도 좀 풀리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뵈어야 하니까요.”

조형숙 서원대 교수·다문화이중언어교육학

그런데 작은아이가 한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도 못 되어 복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친척들과 오랜만에 만나 끼니마다 과식하다 보니 그런가 보다 했단다. 알고 보니 맹장염이라 급하게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미국이면 병원비가 1억원쯤 나왔을 텐데 한국에서 수술하게 되었으니 우리가 복이 많아요.”

“다들 고생했네요. 그래도 한국에서 아프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미국의 의료비는 한국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다행’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외국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살면서 나 역시 의료비 걱정이 많았다.

“여긴 한국이 아니야. 아프다고 덥석 병원에 갈 수 없어. 아프면 타이레놀이나 애드빌 먹고 버티는 게 일상이거든.”

그래서 학교에서 축구나 라크로스와 같은 운동을 할 때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가정의학과에 간 적이 있는데 한 달이 넘도록 이명증세가 심했기 때문이다.

“귓속은 문제 없어 보이는데 이비인후과 진료비가 비싸니까 더 참아보고 힘들면 다시 오세요.”

미국인 의사도 이비인후과에 연계시켜주는 걸 망설일 정도였다. 미국은 의학은 발달했지만 의료비가 비싸고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병의원의 진료 속도는 매우 느리다. 스웨덴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도 의료비는 무료지만 정작 열이 나고 아플 때는 의사를 만나기 쉽지 않다. 비싼 민영 병원에 가거나 자신의 진료 차례가 오기까지 몇 달씩 기다려야 하니 복지국가의 실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보건소에서 아이들에게 간단한 예방주사를 맞힐 때조차 작성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고 대기시간도 길었다. 의사를 만나면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예방주사를 놓으며 아기에게 즐거운 노래를 불러주거나 “You are so brave(넌 참 용감하구나)”라고 칭찬해주고 다정하게 응대해 준다. 처음에는 그 친절함에 감동했지만 미국에서 몇 해를 살고난 후에는 칭찬과 과장된 상냥함이 귀찮아졌다.

‘쓸데없는 칭찬이나 노래 좀 그만하고 빨리 진료하고 다음 환자 좀 덜 기다리게 하면 안 되나? 왜 brave(용감하다), fabulous(멋지다) 타령일까?’

그런 미국의 문화 속에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 또 한국문화가 이상하게 보였다. 며칠 쉬면 될 증세에도 환자는 병원을 찾고 의사는 신속하게 과잉진료를 한다. 병원 문턱이 저렇게 낮아도 될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한때는 전 국민 건강보험이 자랑스러웠으나, 가끔은 이런 시스템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건강보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는 미성년자와 노령인구를 부양해야 한다. 인구 노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생산 가능한 인구는 줄어드는데 젊은 세대에게 노인을 위한 연금과 건강보험료와 요양급여까지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