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몽골 기병론

몽골군은 불과 25년 만에 로마군이 400년 동안 정복한 것보다 더 넓은 땅을 차지했다. 전성기 몽골 제국의 면적은 3100만㎢에 이르렀는데 이는 대략 아프리카 대륙만 한 넓이다. 현대 지도에 칭기즈칸이 정복한 땅을 그려 보면 30개국에 이르며 인구는 30억명이 훨씬 넘는다. 그러나 당시 몽골 부족 전체는 약 100만명이었으며, 거기서 징집한 군대는 10만명에 불과했다.

몽골군은 어떻게 이런 소수 병력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 당시 문명국가 군대 대부분이 보병이었던 것과 달리 몽골군은 모두 기병으로만 이뤄졌다. 또 유럽의 기병이 평균 70㎏에 달하는 갑옷과 무기로 중무장한 반면 몽골은 7㎏의 경량 무기만 갖춘 경기병(輕騎兵)이었다. 몽골군의 두 번째 특징은 병참이나 보급 대열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전진하면서 말의 젖을 짜고, 가축을 도살하여 식량을 만들었다. 마르코 폴로는 몽골 전사들이 불을 피우거나 음식을 조리하느라 멈추는 일 없이 열흘 동안 이동할 수 있었다고 ‘여행기’에 기록했다.



대선을 100여일 앞두고 선거대책위원회 쇄신 경쟁을 벌이는 여야가 모두 몽골 기병론을 꺼내들었다. 조직의 경량화를 통해 기민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새로운 민주당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몽골 기병처럼 필요한 일을 신속히 해내는 조직으로 바꿔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만난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도 “이제는 중원을 향해서 몽골 기병처럼 진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조직의 규모를 줄이고 기동성을 높인다고 해서 오합지졸이 정예강군이 될 수는 없다. 칭기즈칸은 휘하 장수들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해 그들의 특성에 맡게 임무를 맡겼다. 몽골군은 투석기 등 신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었고, 적의 분열을 유도하는 등 뛰어난 선전(宣傳)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사계절)의 저자인 잭 웨더포드는 “몽골의 승리는 우월한 무기가 아닌 단결과 규율, 지도자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에서 나왔다”고 진단하고 있다. 선대위 쇄신과 선거 승리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덕목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