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74)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정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그는 서강대 교수를 하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14·15·16·18대 국회의원, 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옛 민주당 대표까지 굵직한 자리를 거쳤다. ‘대통령감’, ‘저평가 우량주’라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문제는 대권 욕심이 앞서 탈당을 반복한 탓에 ‘철새 정치인’이란 낙인이 찍힌 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 사람도 참… 한나라당에 남았으면 대권후보까지 됐을 건데…”라고 말한 바 있다.
‘손학규 징크스’는 유명하다. 그가 거취 관련 중요한 기자회견을 하면 공교롭게도 큰 일이 터졌다. 2006년 회심의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친 날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고, 이듬해 한나라당을 탈당하자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돼 행보가 묻혔다. 2014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전남 강진 만덕산 흙집에서 2년 3개월이나 칩거하다 정계복귀 선언을 한 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국민의당에 입당하던 날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돼 주목받지 못했다. ‘타이밍의 마술사’라는 반어적 별명마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