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은행이 없어지면 돈 필요할 때 저 멀리까지 가야 하는데…. 나는 다리가 아파서 힘들어. 나이 먹은 사람들은 가기가 어려워요.”
지난달 30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A아파트단지 내 체육관. 아파트 주민 김태하(81)씨가 “은행이 없어지면 막막하다”고 말하자 자리에 모인 20여명의 주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었다. 이날 이들이 모인 이유는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유일한 은행이 곧 없어지기 때문이다. 김씨가 “아파트에 5000세대 넘게 사는데 은행이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은행 점포를 없애는 건 노인을 무시하는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주민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주민들은 은행 폐점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국회의원 면담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줄어드는 은행 점포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고령자 등 디지털 취약계층이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디지털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온라인 금융거래 서비스 이용률은 일반 국민의 41.1%에 불과하다. 모바일뱅킹이 활성화됐지만, 많은 노인은 여전히 입출금 등 금융거래를 하기 위해 은행 점포를 찾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은행이 없어지는 지역의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A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안에는 신한은행만 있고, 아파트 근처에 KB국민은행이 있지만 신한은행은 내년 2월에, KB국민은행은 이달 말에 문을 닫는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은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지금보다 2㎞가량을 더 걸어가야 한다.
아파트 주민 B씨(70대)는 “현금을 주로 써서 거의 매일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간다”며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용은 익숙지 않은데 직원도 없어서 혼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은행이 사라진다니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 최모(69)씨도 “아파트 주민의 3분의 2는 노인인데 은행 폐점을 찬성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다른 지점은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없어서 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밖에 경기 고양 일산동구 풍동에서도 내년 1월 KB국민은행 폐점이 예정돼 주민들이 서명운동을 벌이고 지역 국회의원과 면담하는 등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점포 축소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점포 폐쇄 결정 전 영향평가를 시행하고 ATM 등 대체수단을 제공하고 있지만 노인층의 불편은 해결할 수 없는 등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발표한 ‘은행권의 점포 축소와 금융소외계층 보호를 위한 과제’ 보고서에서 “점포 축소에 따른 금융 소외현상을 방치할 경우 일부 이용자들이 금융 서비스에서 탈락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공동지점(여러 은행이 한 공간에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 운영이나 은행 대리점 제도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