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는 공공의 개입이 큰 분야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다른 가치에 우선한다. 시장의 자유경쟁에 맡겨두어서는 이 가치가 위협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의료인 면허제도를 두고 ‘명칭독점’과 ‘업무독점’의 특권을 인정하는 한편, 다양한 의무와 규제를 가하는 것은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공공의 개입이 정당화되는 또 다른 특성으로 ‘정보 비대칭성’이 거론된다. 의료인은 전문성이 높고, 환자는 의료인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부분 의존한다. 의료인은 ‘서비스 공급자’이면서, 동시에 ‘서비스 수요의 대리인’ 위치에 있다. 공급자가 수요를 결정하는 구조이다. 의료인은 환자에게 적합한 의료를 권하고, 환자는 의료인의 전문성을 믿고 맡기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아예 공공이 의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아니라면, 의료를 생업으로 하는 의료인이 ‘도덕적 해이’에서 자유스러울 수는 없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시장 원리가 잘 기능하지 않는다. 여기서 공공의 개입이 필요해진다. 공공의 정보 제공 기능이다.
우리는 다양한 서비스를 구입해 이용한다. 서비스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고, 얼마를 내야 할지도 사전에 모른 채로 이용부터 하는 것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의료서비스는 그런 경우가 보통이다. 의사의 전문성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아프게 되면 필수적인 의료는 가격 불문하고 받아야 한다. 그러니 가격이 너무 높아도 전문가가 권하는 의료를 거부하기 힘들다. 필수성이 큰 의료서비스를 시장에 맡겨두면 그 서비스는 가격이 한없이 오를 수 있다. 너무 비싼 의료비로 모든 국민이 고통을 받는 미국 의료시스템이 이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