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시행사인 甲은 상가를 신축·분양하는 사업을 하면서 ‘분양사업과 관련된 수입금 일체를 신탁회사 명의의 분양수입금 관리계좌에 입금하고, 분양 개시 후 위 관리계좌에 입금된 수입금은 시공사인 乙의 동의서를 첨부한 甲의 서면 요청에 따라 신탁회사가 인출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사업약정을 신탁회사와 체결하였습니다.
그 후 甲은 수분양자 丙과의 계약을 해제하게 되자, 해약금을 분양수입금 관리계좌에서 인출하기 위하여 위 사업약정에 따라 乙에 동의를 요청하였습니다.
乙은 인출에 동의하지 않은 채, 관리계좌에서 자신의 공사대금을 변제받고자 먼저 금원을 인출하였고, 그 결과 관리계좌의 잔고가 부족하게 되어 丙은 해약금을 반환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丙은 乙로 인하여 해약금을 반환받지 못하게 되었다면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乙은 丙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을까요?
A. 이와 관련하여 최근 의미 있는 대법원 판례가 있었습니다.(2021. 6. 30. 선고 2016다10827 판결)
결론부터 살펴보면 대법원은 乙이 丙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乙의 행위는 거래의 공정성과 건전성을 침해하고 사회 통념상 요구되는 경제 질서를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이고, 丙은 乙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甲으로부터 해약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丙이 甲과의 분양계약 해제에 따라 갖게 되는 권리는 해약금 반환채권으로. 일반적으로 제3자에 의하여 채권이 침해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불법행위가 성립되지는 않습니다. 물권과 달리 채권에 대해서는 배타적 효력이 부인되고, 채권자 상호 간 및 채권자와 제3자 사이에 자유경쟁이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거래에서 자유경쟁 원칙이라는 것도 법질서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을 전제로 하므로, 제3자가 채권자를 해친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법규를 위반하거나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등의 위법행위를 하여 채권의 실현을 방해하는 등으로 채권자의 이익을 침해하였다면, 예외적으로 불법행위가 성립될 수도 있습니다(대법원 2003. 3. 14. 선고 2000다32437 판결 등).
대법원은 위 사건에서 乙은 丙의 해약금 반환채권이 자신의 행위로 침해됨을 알면서도, 자신의 공사대금을 먼저 추심하기 위하여 금원을 인출하였고, 乙의 이러한 행위는 부동산 선분양 개발사업 시장에서 거래의 공정성 등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이며, 이로 말미암아 丙이 해약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본 것입니다.
원심을 내린 서울고등법원도 같은 판단을 하면서 사업약정에서 시공사에 자금 인출 동의 권한을 부여한 것은 시행자가 사업자금을 불법적으로 유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 시공사의 공사대금을 먼저 받기 위하여 수분양자들이 정당하게 반환받아야 할 분양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시공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시행사가 수분양자들에게 해약금을 반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2016. 1. 26. 선고 2015나634 판결).
또한 서울고법은 丙이 甲에 대하여 해약금 반환채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분양수입금이 해약금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재원이고 乙이 금원 인출 요청을 거절한 채 자신의 공사대금 수령을 위해 분양수입금을 인출하여 계좌의 잔고가 부족해진 이상 丙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여지윤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jiyoun.yeo@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