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호암미술관이 재개관전 ‘야금(冶金):위대한 지혜’를 통해 야금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혁신임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야금이야말로 예술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야금 미술 작품 45점의 거대한 목소리다.
야금이란 불로 쇠를 다루는 일을 통칭하는 용어다. 광석을 채굴하고 금속을 추출하고 제련, 가공, 장식하는 것까지, 과정과 결과물 모두를 포함한다.
신라 금동관과 태환이식(금 귀걸이)이 놓인 방식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 후면에 투명 아크릴 거치대를 달고 그 위에 작품을 올렸다. 관람객 시선에서 마치 사람이 귀걸이를 하고 있을 때처럼, 사람이 왕관을 쓰고 있을 때처럼 공중에 떠 보이도록 한 것이다. 영혼을 마네킹에 담으려 하는 시도가 있다면, 이 작품들이 그것이다.
지붕 끝에 달리는 토수 역시 좌대 위에 눕혀 놓은 모습대로 측면을 관람하게 되는 통상적인 방식과 차별화했다. 투명한 아크릴 장치를 이용해 공중에 띄워 실제 사용된 모습대로 토수 얼굴이 관람객을 보도록 했다. 미술품이 만들어진 당대 시공간에 찾아온 것처럼, 관람객은 작품과 더 특별하고 생생하게 교감할 수 있다.
미술관 측은 내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앞두고 벽지를 떼어내고 바닥을 드러낸 공간에서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 난관 속에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미술관 측은 “노출 콘크리트 공간에 쇠로 만든 파티션과 쇼케이스를 사용하는 파격적인 전시 연출로, 거친 자연에서 가장 귀한 창조물을 만드는 인간의 위대함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장인이 아니라 작가
국가무형문화재들의 창작품이 나온 것은 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미덕이다. 무형문화재들이 장인이라기보다는 작가로 조명된다. 국가무형문화재 주철장인 원광식과 입사장 홍정실, 장도장 박종군이 참여했다. 이들은 전통 금속 공예 기술을 익혀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장인들이지만, 그 전통 기술 토대 위에 자신이 터득한 기법으로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창작한 작품들을 보관해 왔다. 국가는 그들에게 전통을 얼마나 똑같이 구현하느냐만 요구했지만 이들은 달랐다. 미술관 측은 이들이 모두 자기 작품세계를 가진 예술가임에 주목했고, 동시대 시공간에서 그들이 만든 창작품을 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요청이 처음인 장인들은 당황하기도, 기뻐하기도 하면서 작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미술관 측은 삼고초려도 했다고 한다.
그들이 자기만의 방에서 꺼내 놓은 소장품들은 각자의 작가주의로 만들어진 현대예술품이자, 미래의 보물이었다. 홍정실 입사장의 ‘침묵의 상징’은 금과 은실의 미학이 평생 전통 입사의 길을 걸으며 체득하고 느낀 사유와 전통에 대한 경이로운 상징을 다채롭게 함축한 예술성 높은 작품이란 설명이다. 박종군 장도장의 은과 강철로 된 장도 3점은, 장도라 하면 조선 여성의 은장도만 떠올리는 왜곡되고 얄팍한 인식을 부끄럽게 한다.
◆예술이 된 금속문화
전시는 야금을 기술이 아닌 미술로 재정립한다. 개념적으로는 4개부로 나눠 자연과 신에 대한 경외가 상징적 기호와 추상미술화한 청동기시대 이후, 왕의 권위와 호국 염원을 표현한 삼국시대 이후, 불교 미술, 현대미술 속에서 보여준다. 국가무형문화재 작품 5점을 비롯, 국보 5점과 보물 2점이 등장한다.
국보인 삼한시대 세형 동검과 동모는 특히 현존하는 한국식 동모 중 가장 큰 규모를 갖추고 있는 귀중한 유물이라는 설명이다. 전시된 국보 가야금관은 현재까지 알려진 가야 금관 중 유일하게 가장 완벽한 형태의 금관이다.
고려시대 은제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은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소장품으로 특히 놓쳐선 안 될 작품이다. 높이 19.3㎝인 불상과 광배는 섬세함이 놀라워, 작을수록 화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치게 한다. 미술관 측은 “철불의 철과 대비되는 부드러운 은과 금을 사용해 불교미술에 작용된 야금의 다채로움과 정교함까지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설명했다. 미술관 측은 “그동안 금속을 다루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대장장이, 연금술사, 제련, 금속공예 작가 등 전통과 현대의 분리된 기준으로, 혼용해 써왔다”며 “특히 전통미술의 분야에선 청동기 유물에서부터 오랜 기간 지속된 수많은 금속 미술을 포용하는 용어조차 찾기 힘든 실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고대 청동기, 불교 조각, 금속 공예, 민속 공예 등의 언어로 표현된 미술의 근간에 금속문화가 있다. 전시는 금속문화 내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용어가 ‘야금’이라고 강조하고,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면서 소멸하지 않는 혁신의 정신을 보여준다. 1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