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확산을 막기 위해 ‘단계적 일상회복’을 중단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유턴’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지난달 1일 일상회복 시작 후 44일 만이다. ‘일상회복 후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위중증 환자, 사망자 발생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결국 물러선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정부는 현 방역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조치를 시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추가적인 사적모임 규모 축소와 영업시간 제한까지도 포함하는 대책을 검토 중”이라면서 “대책이 시행된다면 또다시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분들을 위해 적절한 손실보상 방안도 함께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은 경제를 이유로 방역 강화를 미루기엔 코로나19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785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기존 기록인 지난 8일 7174명보다 676명이나 많다. 서울 발생 확진자는 3166명으로, 처음 3000명을 돌파했다. 이날 오후 9시까지 전국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인원은 6564명으로 종전 동시간대 최다 기록을 넘어섰다. 16일 다시 역대 최다 신규 확진자 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위중증 환자는 58명 늘어난 964명으로, 역시 전날 최다 기록을 또다시 하루 만에 경신했다. 위중증 환자 1000명이면 일반 질환 중환자 치료에 차질이 발생한다. 사망자는 70명이다. 지난 12일 이후 나흘간 사망자는 264명으로, 지난 한주 사망자(401명)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방역 조치로는 현재 수도권 6명, 비수도권 8명인 사적모임 허용 인원을 전국 4명으로 줄이고,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을 오후 9시로 단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기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조치다. 다중이용시설에 따라 비교적 감염 위험이 낮다고 평가되는 곳은 오후 10시로 영업시간 제한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당정은 인원 제한으로 인한 매출 감소 부분도 손실보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16일 오전 중대본 회의를 열고 거리두기 확대방안과 그에 따른 소상공인 손실보상안을 결정해 발표한다. 이번 조치는 일단 연말까지 2주간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정부의 ‘검토’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료계 등 현장에선 ‘방역체계 붕괴 임박’ 등 아우성을 친 지 오래인데 ‘특단 조치를 하겠다’는 언급만 반복했다. 일반 성인 3차 접종, 사적모임 허용 인원 6·8명으로 축소, 방역패스 적용 시설 확대 등 찔끔찔끔 대책을 내놓으며 버텼으나 효과는 없었다.
이와 관련해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내용적 문제에 있어 여러 고민이 있다”며 “모임제한이나 시간제한은 국민불편이나 민생경제 영향 등 파생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고, 이 부분을 결정하는 데 심사숙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확산세 꺾을 뾰족수 없어 고육책… 자영업자 반발 불보듯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은 지난 특별방역조치에도 좀처럼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확산세를 최대한 억제해 방역·의료적 대응 여력을 재정비하고, 3차 접종을 통해 고령층이 면역을 형성할 시간을 벌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정부의 빗나간 예측, 부족했던 준비의 결과여서 정부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자영업자들은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5일 거리두기 강화를 예고하면서 “전국적 방역 강화 조치를 시행한 지 열흘째인데, 전국의 코로나 위험도는 3주 연속 ‘매우 높음’으로 평가될 정도로 여러 방역지표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도 브리핑에서 “유행 확산 속도나 고령층 (확진자) 비중 등을 보면 증가폭이 둔화하는 경향은 비록 초기지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확실한 감소세로 전환되는 등 유의미한 변화는 아니다”고 밝혔다.
애초 지난달 1일 일상회복의 방역 완화 수준이 높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민생을 이유로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하면서 지역사회 감염이 눈덩이처럼 커진 상태였다. 접촉 증가로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백신 미접종자의 확진이 치솟았다. 정부 예상보다 빨리 백신 접종 효과가 떨어지면서 고령층 돌파감염도 늘었다. 정부는 일상회복 전환 후 40여일 동안 4번에 걸쳐 병상 확충 행정명령도 내렸다. 하지만 병상 확충은 시간과 인력 없인 안 되는 일이고, 병상 확충 속도는 확진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의료대응역량 대비 발생 비율은 87.8%에서 110.3%로 한계치를 넘어섰다. 전국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도 81.4%로 사실상 포화됐다. 재택치료자 비율은 전체 확진자의 28.6%까지 확대됐지만, 키트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등 관리에 구멍이 노출됐다.
당장 다음주 거리두기 강화를 시행해도 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 불가피하다. 거리두기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최소 2주 이상 시간이 걸린다. 정부 목표대로 60세 이상이 이달 말까지 3차 접종을 완료할 경우, 다음달 이후 서서히 위중증 환자가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급한 대로 재택치료자를 대면 진료하는 의료기관을 현재 13곳에서 21곳을 더 추가하기로 했다. 이와 별개로 29개 의료기관과 단기·외래진료센터 설치를 협의하고 있다. 또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산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를 처방하는 기관을 확대할 예정이다. 입원환자에 한해 항체치료제를 투여하고 있는데, 치료제 처방기관을 생활치료센터, 요양병원, 일반병원, 단기·외래진료센터, 노인요양시설 등으로 늘리기로 했다.
의료계에서는 병상 확보도 중요하지만 이를 감당할 인력부터 충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환자 병상 정부 목표치는 1365개로, 아직 1298개만 확보됐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3일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현장에 수십명의 의료인력이 충원돼도 모자란데 정부는 ‘재난 상황이니 어쩌겠느냐’ ‘코로나가 끝난 뒤 인력이 남으면 어떻게 하냐’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최근 KBS 대담에서 “특단의 조치는 3∼4주는 적용해야 의료진이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중환자 병상 가동률을 낮추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방역 협조는 이제 끝났다’며 정부 규탄 시위를 예고했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오는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입장문에서 “코로나19 이후 2년이 흐르는 동안 정부는 병상 확보와 의료인력 충원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라며 “정부와 방역당국의 무책임이 또다시 자영업자에게만 떠넘겨지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하니 또 습관처럼 자영업자만 규제하려고 한다”고 거세게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