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하지만 신호는 확실히 잡혔다. 현재 위치를 나타내는 작고 동그란 구체가 맵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산책이라도 하듯 골목 사이사이를 배회하던 구체는 어쩌다 한 번씩 멈춰 서기도 했다. 하늘이라도 올려다보는 걸까. 아니면 새나 고양이를 만났나. 나는 맵을 키워 구체가 돌아다니고 있는 장소를 확인했다. 재언 선배가 살던 동네였다.
그럼 이 사람 정말로 산책 중이잖아.
선배, 자요?
사실 나는 오전 시험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동방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선배의 얇은 잠바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그의 몸에 테두리처럼 달라붙어 있던 그 허물과도 같은 얇은 잠바에서는 축축하게 젖은 흙과 말라붙은 비 냄새가 났다. 그대로 심으면 뭐라도 피어날 것 같은 냄새. 사람이 아닌 흙의 체취. 맡고 있자니 몸속에서 뭔가가 꿈틀꿈틀 움틀 것만 같았던, 간질간질 몸을 깨우던 냄새. 아직도, 그 냄새가 날까? 나는 무릎을 굽힌 채로 일어나 선배의 목덜미 쪽으로 몸을 숙였다. 너무 급하게 몸을 기울인 탓에 마치 다이빙을 한 것처럼 눈앞이 아득해졌다.
*
꿈은 항상 그렇듯 급강하하는 감각과 함께 끝났다.
나는 신우의 목덜미에서 눈을 떴다. 선배의 꿈을 꾼 날이면 정신이 온전해질 때까지 한참을 누워있다 일어나야 했지만 오늘은 신우가 곁에 있으니 서둘러 정신을 추슬러야 했다. 나는 어깨에 둘러진 묵직한 팔에서 천천히 몸을 빼냈다. 그를 깨우지 않고 먼저 씻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오늘은 바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는 샵을 최종적으로 셀렉하기 위해 플래너와 미팅을, 그는 신혼집에 가서 오늘 배송예정인 가구들을 받기로 되어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가 잠을 깨웠는지 신우가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거 아스파라거스랑 다른 거지?
그가 줄기콩을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나도 마주 웃었다.
플래너랑 미팅 끝내는 대로 집으로 갈게. 이번엔 진짜 끝장을 볼 거야.
아냐, 어차피 기사님들이 설치까지 해주시는데 뭐. 도와줄 건 없으니까 어머님이랑 저녁 먹고 천천히 와.
그가 내 접시 위에 계란프라이와 구운 줄기콩을 덜어주었다.
그래도 돼?
자기가 자잘한 것까지 체크하느라 더 바빴잖아. 이게 뭐라고. 내 눈치 보지 마.
알았어. 엄마 좋아하겠다. 안 그래도 요즘 좀 우울해하셨거든.
그럼 아예 자고 오는 것도 괜찮겠네.
그러는 게 후환이 없을 것 같긴 해.
끝날 것 같지 않던 결혼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가구가 다 들어오면 각자의 짐을 신혼집에 옮긴 뒤 식까지 남은 3개월 동안 각자의 집을 오가며 편하게 생활하기로 했지만 신혼집이 출퇴근하기에 한결 편한 위치라 신우는 침대가 들어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나도 곧바로 들어와 살길 원하는 것 같았지만 짐짓 모르는 척할 작정이었다. 종잇장처럼 얄팍할지라도 자유는 자유였다. 기혼자가 되기 전에 누릴 수 있는 기한제 자유. 모르긴 해도 나는 분명 이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거였다. 텀블러에 진하게 내린 커피를 담아 식탁에 올려두고 신우에게 인사를 한 뒤 나는 집을 나섰다.
볼에 닿는 바람이 매서웠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히터를 틀고 시트를 한껏 뒤로 젖혔다. 신우가 내 침대를 쓴 날이면 여기저기 몸이 쑤시고 결렸다. 침대가 둘이 눕기엔 좁은 탓도 있지만 살을 붙여오는 그의 잠버릇 때문에 늘 어딘가 짓눌린 채로 새벽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슬쩍 몸을 돌려 품에서 벗어나도 그는 집요한 사냥꾼처럼 나를 옭아맸다. 신혼집이 큰 가구들을 넣기엔 빠듯한 평수임에도 침대만큼은 고민할 필요 없이 퀸 사이즈를 고른 이유였다. 요즘엔 싱글 두 개를 붙여서 쓰기도 한다지만 경계가 생기면 그는 자신의 영역을 등지고 몰아붙이듯이 몸을 붙여 올 것이 뻔했다. 사냥 당하는 밤. 그런 매일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휴대폰을 꺼내 무음 설정을 풀었다. 선배는 오늘도 잠잠했다. 편의점 앞에서 홀연히 사라진 뒤로 며칠째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신호는 사나흘에 한 번, 길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타나 수분 동안 위치를 표시하다가 돌연 사라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날짜를 헤아렸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진지하게 신호를 기다리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배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저 오류일 뿐인데. 오류를 오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는 그 안에서 뭘 찾으려고 하는 걸까. 이제 와서 대체 무엇을.
선배와 연인으로 지냈던 시간은 삼년 남짓. 아무리 좋게 말해도 순조로운 연애는 아니었다. 선배는 서식지를 잃거나 다쳐서 자생이 어려운 야생동물이 임시로 묵을 수 있는 셸터를 설치하기 위해 전국의 야산을 누볐다. 산을 떠나지 못할 팔자였다. 설치한 셸터의 관리와 회수. 대외적인 업무는 그것이었으나 올무나 덫에 걸린 동물이 발견되면 일대를 뒤져 추가적인 피해가 없는지 확인하고 불법엽구를 제거하는 일도 했다. 겨울엔 거기에 먹이 주기 활동이 추가되었다. 그의 휴대폰엔 구출한 가마우지나 금개구리, 솔부엉이, 하늘다람쥐 따위의 사진이 빼곡했다. 무제의 연장선이었다.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 선배는 여전히 삶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선배를 여전히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선배와 나는 각자 일을 하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필요한 방식으로 곁에 있어주진 못했다. 우리의 문제는 서로를 존중하는 동시에 멸시한다는 거였다. 그맘때 나는 스튜디오를 차리면서 촬영을 다니느라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영화를 한답시고 말아먹은 건 비단 인간관계나 프라이드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프리랜서 사이트에 포트폴리오를 올리고 개인 계정을 만들어 가리지 않고 일을 받았다. 들어오는 일은 주로 웨딩이나 기업 홍보물, 워크숍 촬영 같은 것들이었다. 목적이 분명한, 그 어떤 문제의식이나 감정이 끼어들 틈 없는 촬영들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대상의 이름과 얼굴만 바뀌는 누가 찍어도 그만인 영상들. 이름을 빼더라도 내 작품임을 알아주십사 열망했던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 페이도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매달 대출금을 갚고 적금도 들었다. 마음이 편하니 달고 살았던 수면유도제도 자연스럽게 끊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은 나의 전향을 포기선언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지만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내 부끄러움의 원인은 돈이 아니라 찍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했던 알량한 자존심에서부터 기인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걸 내려놓고 나자 세상이 한결 명료하게 보였다. 하지만 선배의 생각은 달랐다. 한 번도 먼저 얘길 꺼낸 적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분명하게 전해졌다. 그는 내가 찍은 작업물을 보려고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것이 나를 위한 배려라도 되는 양. 내 작업물을 모른 척하면 그가 믿고 있는 나의 감독적 소양이나 프라이드가 보존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선배의 그러한 믿음은 역으로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가 다르다고 믿고 있었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기점으로부터 우리는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필연적으로 함께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 두 갈래뿐인 연인이라는 관계의 생태 안에서 헤어지는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고. 새벽녘에 내 이불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를 끌어안고 애틋함을 느끼면서도 다가오는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서로가 이 이별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만일 선배의 몸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며 건강하게 헤어지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돌고 돌아 처음 피팅한 곳으로 숍을 결정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신우에게 가구는 잘 도착했으니 걱정 말라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나는 이쪽도 일정을 잘 마쳤다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곧바로 식사 후에 혹시 마음이 변하면 넘어오라는 메시지가 왔다. 자고 오라던 게 본인이라는 걸 잊은 걸까. 나는 귀가 축 처진 토끼 이모티콘을 보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편히 자고 싶었다. 가뜩이나 여기저기 결린 몸을 이끌고 숍을 오가느라 피곤이 더해진 상태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숍 근처에 바 자리가 딸린 덮밥집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매한 시간대임에도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바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 적당한 곳에 앉아 주문을 했다. 그 사이 신우는 포기하지 않고 도착한 침대와 소파 사진을 차례로 보내왔다. 마지막엔 회심의 일격인 양 셀카까지 끼워져 있었다. 강아지처럼 크고 선한 눈. 신우는 선배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외형은 물론 몸도 성격도 풍기는 분위기며 목소리까지. 교집합이라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선택한 사람이기도 했다. 선배의 특징과 형질을 모두 배제하고 남은 사람을 골랐다는 게 맞겠지. 선배가 선배로서 온전할 수 있게끔. 다른 누군가가 선배와 닮은 어떤 것을 휘둘러 그를 훼손할 수 없게끔. 그렇게 따지면 신우는 내가 만들어낸 필연인 셈이었다. 신우는 선배의 존재를 모른다. 지난 연애가 좋지 않게 끝났다고만 했을 뿐인데 금기를 다루듯 신경 써주어서 이후로 내 입으로 언급할 일이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 친구가 죽은 전 애인이 보내오는 신호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식사 대신 커피 약속을 잡고 엄마의 집으로 가는 길에 알림이 울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내내 그 소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확인해보니 아무런 길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맵 위에 구체가 움직임 없이 박혀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맵을 축소해보니 그곳은 길이 아니라 산이었다. 위치를 복사해 지도에 검색하자 익숙한 산명이 떴다. 선배가 무제를 찍던 시절부터 자주 가던 속리산이었다. 우연은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필연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라. 왜 하필 지금 그 말이 떠올랐을까. 나는 네비게이션에 새 목적지를 입력하고 핸들을 틀었다.
선배의 몸에서 이상이 발견된 건 만난 지 일 년쯤 됐을 때였다. 그는 매끈한 노면에서도 자꾸만 넘어졌다. 삐끗하는 느낌이 아니라 자기 발에 걸려 크게 넘어지는 식이었다. 다리에 자꾸만 힘이 빠진다고 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보양을 한답시고 오래 끓인 음식들을 찾아 먹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수저도 제대로 쥐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밥을 먹는 도중에 그의 손가락 사이로 수저가 맥없이 빠져나갔다. 놓친 게 아니라 쥘 수 없어 떨어뜨린 거란 걸 알고는 서로 놀랐다. 선배의 손을 잡자 작은 물고기를 쥔 듯 근육이 튀며 파득거렸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무력하게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는 선배의 몸속 신경들 중 운동신경만이 선택적으로 사멸하고 있다고 했다. 점진적인 사지의 쇠약과 위축으로 몸이 굳어가다가 결국엔 호흡근까지 마비될 거라고도 했다. 루게릭병의 증상이었다. 선배가 보이는 증상과 진료, 근전도 검사 결과 모두 같은 결과를 가리켰다. 이후엔 비슷한 증상을 가진 다른 병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MRI와 뇌척수액 검사, 골밀도 검사 등 굵직한 검사를 추가로 진행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대할 수 있는 수명은 3년에서 5년. 하지만 그중에서 10%의 환자는 10년 이상 생존하기도 한다고, 치료제는 현재로선 없지만 세계 전역에서 진행 중인 임상이 300여개가 넘으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의사는 말했다. 희망을 잃지 말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나에게는 그 말이 종래엔 반드시 희망을 잃게 될 것이라는 예언처럼 들렸다.
선배는 확진 판정 8개월 만에 용변을 보고 변기 버튼을 스스로 누르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왼쪽 종아리부터 시작된 근력 약화는 왼쪽 팔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가만히 있어도 근육이 튀어 팔다리가 꿈틀거렸고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금세 지쳐서 외부활동이 어려워졌다. 발 앞부분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걸을 때 발등이 자꾸 아래로 처졌고 그 감각을 인식하지 못해서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오래된 멍과 새로 생긴 멍의 합작으로 선배의 다리는 늘 꽃핀 듯 울긋불긋했다.
휠체어를 사야겠어.
마치 새 휴대폰을 사야겠다는 투로 대수롭지 않게 선배가 말했을 때 나는 결국 잘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선배는 나무토막 같은 손으로 내 등을 쓸어주며 괜찮아, 괜찮아 했다.
미나스 시술을 먼저 제안한 것도 선배였다. 환자의 생체정보와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는 그 작은 칩은 갑자기 선배에게 마비 증세가 오거나 쓰러졌을 때 도움이 될 거였다. 선배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시술을 받았다. 시술은 채 20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간단했다. 이후로 나와 그의 어머니는 보호자 권한으로 선배가 어디에 있든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맵 위에 떠있는 작고 희붐한 구체. 나는 그게 꼭 영혼의 결정 같다고 생각했다.
자취집을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간 선배는 사나흘에 한 번은 대형 택시를 불러 국립공원이며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대동할 때도 홀로 갈 때도 있었다. 나도 종종 동행했다.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가거나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견딜 때와는 달리 산에 가면 통증 때문에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이 서있던 선배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평소만큼 쉽게 지치지도 않았다. 내 팔을 붙잡고 쇳소리를 내뱉으며 산책로를 오르는 그의 손마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산에서 뿜어 나오는 불가해한 에너지가 선배를 감싸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산책 대신 나무 등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동자만을 기민하게 움직이며 바람의 행로를 쫓았다. 몸이 굳어갈수록 정신과 감각은 오히려 겹이 벗겨지며 야생동물처럼 예리해지는 듯했다. 그의 귀는 작은 바스락거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낙엽 위로 열매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 새가 앉아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 꽃잎을 가르는 벌레의 날갯짓 소리……
선배는 그 모든 소리를 흘려보내지 않고 차곡차곡 귀에 개어 넣었다. 무위에 대한 존중이 담긴 작업이었다. 그 순간에 선배에겐 잃어버린 기회나 굳어가는 육체, 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직 그 순간만큼의 삶이 고요하고 치열하게 흘러갈 뿐. 나는 그제야 그가 왜 그토록 생의 흔적에 집착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소리들은 선배의 몸 안에서 고이지 않고 흐르며 선배를 채우는 무엇이 될 것이었다. 근육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는 살이 되어줄 것이었다.
산을 내려갈 때 그는 신기하게도 올라갈 때보다 조금 무거워져 있었다. 휠체어를 미는 내 손에 번번이 땀이 찼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카메라를 챙겼다. 어떤 예감에서였다. 무언가를 찍을 수 있을 거라는 예감. 실로 오랜만에 찾아든 감각에 가슴이 뛰었다. 잦은 출장으로 활동성 좋은 여벌의 옷과 신발은 항상 차에 구비되어 있었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고 두꺼운 플리스와 바람막이를 껴입자 한결 든든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매표소가 있는 법주사에서 세조길을 향해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의 증상이 악화되기 전에 함께 와본 적이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선배는 이후로 다시 속리산을 찾지 못했으니 지금 나타난 신호는 함께 산을 올랐던 날의 데이터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신호의 발신지가 어딘지 대충 짐작이 갔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발끝에 힘을 주어 걸었다. 이틀 전에 전국적으로 내린 눈으로 길이 얼어붙어 있었지만 평지나 다름없는 세조길을 걷기에 무리는 없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하는 산객들의 얼굴이 저마다 밝았다. 내 쪽을 향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나도 내려올 때는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를 최대한 천천히 폐 속으로 집어넣었다 뱉었다. 코끝이 못 견디게 시렸다.
점차 험악해지는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 반쯤 올랐을 때쯤 문장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보통 산행은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전체적인 산의 풍광이 짐작되는데 반해 속리산은 문장대 정상에 올라야만 노고에 대한 보상처럼 경치를 내어주었다.
예고편 없는 영화 같지 않아? 너무 자신만만해서 예고편도 안 만든 아주 끝내주는 영화.
선배가 했던 말을 되뇌며 문장대 정상을 밟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머리까지 띵했다. 무릎에 손을 짚고 잠시 숨을 고르다 고개를 들자 눈 이불을 포근하게 덮은 암릉과 깎아지른 속리산의 유려한 등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절경에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로 손이 가지 않았다. 내가 찍어야 할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괜히 울컥해 뜨거워진 눈시울을 꾹 눌렀다. 구체는 여전히 움직임 없이 한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가 내 귀에 속삭였다. 다 왔어 현수야. 바로 앞이야. 나는 중얼거렸다. 그치만 여기가 끝이야, 선배. 우리는 문장대까지 오르고 왔던 길로 내려갔었으니까.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는 거야. 왔던 길이 아니라면. 나는 고개를 돌려 방금 내려다봤던 능선들로 이어지는 또 다른 길을 바라보았다.
다시 발걸음을 떼기까진 꽤 큰 각오가 필요했다. 드문드문 앞서가던 이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석양도 능선 너머로 완전히 넘어가 자칫하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나를 추동하는 이 예감의 정체를 확인해야만 했다. 나는 계속 나아갔다. 숨은 찬데 몸이 접히는 모든 곳에서 땀이 쏟아졌다.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어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낮은 경사로 반복되었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다가 발을 접질러 넘어진 것은 찰나였다. 반사적으로 한손으로 카메라를 안고 한손은 중심을 잡기 위해 뻗었지만 무릎을 박으며 계단을 굴렀다. 단차가 높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매섭게 얼어붙은 땅의 냉기가 엎어진 몸을 곧장 밀어냈다. 일어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돌계단에 앉은 채로 숨을 골랐다. 까진 무릎과 손바닥에서 흙을 털어냈다.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몸이 얼어선지 시큰거리기만 할 뿐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위는 겨우 한 치 앞만을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워져있었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카메라의 상태를 살폈다. 돌에 조금 쓸린 거 말곤 별다른 이상은 없어보였다. 휴대폰도 잘 터졌다. 다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무섭지 않아.
스스로를 다독이던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여서 처음엔 잘못들은 줄 알았지만 잠시 기다리자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에 분명한 기척이 실려 왔다. 정체가 무엇인진 몰라도 내 쪽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다급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최대한 천천히 돌계단에 등을 대고 누웠다. 카메라를 명치 부근에 고정시켰다. 삽시간에 땀이 식었다. 추위에 턱이 덜덜 떨려왔지만 입술을 꽉 물고 버텼다. 내 기척을 느꼈는지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자리를 뜨지 않고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상대와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는 심정으로 나는 버텼다. 긴장감으로 엮은 밧줄의 끝단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숨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체감으로는 삼십분, 아니 한 시간쯤 지난 것 같았지만 고작 십 여초 정도밖에 안 됐을지도 모른다. 추위와 어둠, 미지의 대상이 주는 긴장감이 나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시킨 것 같았다. 빠르게 뛰던 심장이 천천히 제 박동을 찾아갔다. 더 이상 숨소리도 거슬리지 않았다. 나는 어둠에 섞여 들었다. 아주 서서히 그 공간에 동화되어갔다.
다시 수분, 아니 어쩌면 수초가 흘렀을까.
어둠 속의 한 지점이 흔들리더니 마침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하얀 꽁지깃으로 눈 비탈을 쓸며 신중하게 발을 내딛는 그것은 새였다. 크기는 꿩과 비슷했지만 긴 꽁지깃은 공작을 연상시켰다. 눈가가 유리가루가 섞인 푸른색 잉크를 쏟은 듯 오묘하고 차갑게 빛났고 머리에 같은 색의 댕기깃이 솟아있었다. 멀리서 보면 눈 속에 파란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일 듯했다. 새는 머리를 두런거리며 자신의 족적을 확인하듯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고는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요 속에 눈과 흙, 나뭇잎 위를 밟는 작은 발소리만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귀를 두드렸다. 검고 작은 눈이 내게 겨냥하듯 당겨져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 새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내 주위를 맴돌았다. 인사를 하는 듯도 했다. 애타는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놀란 새가 지면을 박차며 폭죽처럼 튀어 올랐다. 하얗고 긴 날개와 늘어진 꽁지깃이 어둠 속에서 성호처럼 빛나다 사라졌다. 찰나였으나 내게는 그 순간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재생됐다. 가슴이 서늘하도록 매섭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나는 고여 있던 숨을 터트렸다. 뜨거운 입김이 피어올랐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그토록 선명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던가.
어느덧 신호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신호를 기다리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카메라를 품에 안았다. 그는 무제 안에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