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의 사망으로 대장동 이슈가 재부상하면서 여야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권이 ‘대장동 윗선’으로 지목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성남시장 재직 때는 (김 처장을) 몰랐다”며 김 처장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한편, 또다시 ‘대장동 그림자’가 짙어지는 데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과거 이 후보와 김 처장이 함께 찍힌 사진들을 공개하며 “언제까지 거짓말로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몰아세웠다.
22일 이 후보 측과 민주당은 이번 김 처장 사망은 유한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본부장 사망 때와는 결이 다르다는 전제로 대응에 나섰다. 민주당은 김 처장 사망 소식이 전해진 전날 밤에는 별도 논평을 내지 않다가 이날 오전 고용진 선대위 수석대변인 명의로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밝혔다. 유 전 본부장 사망 때 이 후보가 직접 입장문을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사 내 ‘2인자’라는 의미로 ‘유투(two)’라고 불린 유 전 본부장 사례와는 달리, 김 처장은 당시 팀장급 직원에 불과하므로 성남시장이었던 이 후보와는 접점이 없었다는 논리에서다.
이 후보 측은 “이 후보는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 처장과는 서로 안면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 후보도 이날 SBS인터뷰에서 김 처장에 대해 “성남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며 “경기도지사가 된 다음 (대장동 의혹으로) 기소됐을 때 (개발사업 관련) 세부 내용을 주로 알려준 분”이라고 회고했다. 또 ‘대장동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정말 이게 이런 표현을 하면 좀 그런데 미치겠다”며 “빨리 (특검을) 해서 확실하게 전모를 밝히는 게 낫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의 이 같은 해명이 사실이 아니라며 특검을 촉구했다. 김은혜 선대위 대변인은 이 후보와 김 처장의 인연이 성남시장 당선 전부터 시작됐다고 직격했다. 김 대변인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이 후보가 성남정책연구원 공동대표 시절인 2009년 8월 분당구 야탑3동 주민센터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김 처장이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변인은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비교적 최근 사진을 보여드리겠다”며 이 후보가 2015년 1월 성남시장 재선 시절 떠난 10박11일 호주·뉴질랜드 출장 때 김 처장이 개발사업1팀장 신분으로 동행한 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출장엔 공사 1인자라는 의미의 ‘유원(one)’으로 불렸던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도 동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대변인은 이 후보를 향해 “특검을 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며 “고인에 대한 발언에 해명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 후보 측은 통화에서 “단순 동행까지 일일이 기억하긴 힘들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대장동 게이트 의혹 공세에 화력을 쏟아부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정부는 비리만 터지면 왜 관련자가 죽어 나가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이 후보가 국민의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즉시 민주당에 특검 실시를 지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이재명비리검증 특위의 김진태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항의 방문하며 “이제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거의 안 남았다. 누가 또 불행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며 특검 도입을 거듭 촉구했다.
민주당 한병도,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회동해 대장동 특검 협상을 진행했지만 견해차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 민주당은 특검 수사 대상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본부장(본인·부인·장모) 의혹’까지 포함할 것을 요구했지만, 국민의힘은 이 후보로만 특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 추천 방식도 민주당은 상설 특검을, 국민의힘은 일반 특검을 요구하며 이견을 드러냈다. 한 수석부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이) 대선 전까지 정치 목적에 활용하려는 특검임이 너무 뻔하다”고, 추 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이) 실제로는 특검을 안 하겠다는 이중플레이”라고 비판했다.
◆배임 의혹 핵심 ‘연결 고리’ 사라져 검찰 수사 ‘결말 없는 표류’ 우려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배임 혐의 ‘윗선’ 규명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유동규(52)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윗선인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비서실 부실장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관여됐다는 의혹을 입증하려면 이들이 화천대유자산관리 민간사업자 선정 과정,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 경위 등에 관여한 정황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모두 참여한 김 처장이 극단 선택을 하면서 대장동 수사는 이대로 표류하다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전담 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지난 9일 김 처장에 대한 4차 참고인 신분 소환조사를 진행했다. 유 전 본부장 측근으로 알려진 김 처장은 대장동 민간사업자 1, 2차 심사에 참여해 화천대유가 포함된 하나은행 컨소시엄에 유리한 점수를 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김 처장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하나은행 컨소시엄에 총점 994.8점을 줬다. 2위인 한국산업은행 컨소시엄(906.6점), 3위인 메리츠종합금융증권 컨소시엄(832.2점)과는 무려 85~162점 차이다.
이제 배임 혐의 윗선 규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석 달째 수사가 이어지는 동안 사건 관계자 2명이 연거푸 극단적 선택을 한 것도 수사팀에 상당한 부담이다. 향후 검찰은 배임 의혹은 놔두고 황무성 초대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사직강요 의혹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이재명 후보의 최측근인 정진상 부실장 소환 일정을 고심하고 있다. 관련 녹취록에서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은 황 전 사장에게 사직을 강요하며 ‘시장님’과 ‘정 실장’을 각각 7, 8차례 언급했다. 황 전 사장 사직이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 후보와 정 부실장의 뜻으로 해석됐다.
검찰엔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도 남아있지만 지지부진한 편이다. 지난 1일 법원이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뒤 검찰은 ‘50억 클럽’에 연루된 인물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별도로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고인은 실무자였을 뿐” 억울함 호소
최근 김문기 경기 성남도시개발공사(성남도개공) 개발사업1처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경영공백 상태이던 성남도개공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22일 성남도개공에 따르면 전날 밤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김문기 처장은 최근 특혜의혹에 휘말린 성남 대장동 개발 및 백현마이스 공영개발 등을 담당한 실무책임자였다. 앞서 상급자인 김모 전 개발사업본부장은 임기를 50일 가까이 앞둔 지난달 12일 사임했다. 김 전 본부장은 대장동 의혹과 별다른 연관이 없어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지만, 심적 부담을 많이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윤정수 성남도개공 사장은 3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달 6일 퇴임해 현재 강모 기획본부장이 사장 직무대행과 개발사업본부장을 겸임하고 있다. 강 본부장은 최근 연임이 불발되면서 오는 30일 공사를 떠날 예정이다.
한편 김 처장의 유족은 이날 “고인은 실무자였을 뿐”이라고 억울해했다. 김 처장의 동생인 A씨는 김 처장 빈소가 마련된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에 결정권자 없이는 사업을 추진할 힘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은 생전 줄곧 ‘실무자로서 일한 것밖에 없다’며 억울해했다”며 “수사 기관이 형의 업무 영역이 아닌 것까지 ‘하지 않았냐’는 식의 질문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형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이 나라, 이 정권,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