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를 지속적으로 배출할 경우 금세기 말 우리나라는 여름이 최대 6개월까지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탄소 배출을 크게 줄여도 겨울 길이는 현재보다 70일 가까이 짧아져 3개월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한 달 수준까지 짧아질 수도 있는 것으로 전망됐다.
기상청은 23일 재생에너지 발전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크게 줄어든 경우(저탄소 시나리오)와 현재처럼 화석연료 사용이 많고 도시 개발을 확대하는 경우(고탄소 시나리오)의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한 ‘남한 기후변화 전망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분석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실무그룹1의 저탄소·고탄소 시나리오에 근거했다.
고탄소 시나리오에서 남한의 연평균 기온은 21세기 전반기(2021∼2040년)와 중반기(2041∼2060년)에 서서히 증가하다 세기 말인 2081∼2100년에 최고 6.3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도출됐다. 최근 20년 평균기온인 11.9도는 18.2도까지 상승한다.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강수량도 폭증한다. 현재 1328㎜인 연평균 강수량은 금세기 후반 18%까지 증가해 1571㎜로 전망됐다. 반면 저탄소 시나리오에서 금세기 후반 평균기온은 최대 2.3도 상승하고 강수량은 3%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기상청은 전 지구 예측모델을 세분화해 이번에 처음으로 남한을 수도권,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로 세분화한 권역별 전망을 제시했다. 전 지구에서 고위도일수록 기온 증가폭도 큰 경향이 관측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하게 남부지방보다 중부지방 기온이 더 많이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21세기 후반이면 강원을 제외한 수도권, 충청권 등 중부지방에서 폭염이 가장 빈번할 것으로 예상됐다. 고탄소 시나리오에서 연중 수도권은 86.4일, 충청권은 89.1일 폭염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1년 중 3개월 가까이는 하루 최고기온이 33도를 넘긴다는 뜻이다. 현재는 경상권에서 폭염일수가 12.0일로 가장 많고 수도권은 7.8일, 충청권은 8.7일이다. 저탄소 시나리오에서는 수도권 폭염일이 25.0일, 충청권 28.2일로 억제됐다.
강수량 역시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전국적인 증가세 속에 제주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나타났다. 2149.6㎜인 제주 연강수량은 2558.6㎜까지 늘어난다. 집중호우 강도도 강해져 현재 4.9일인 제주 호우일수는 21세기 후반이면 7.1일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늘어나고, 하루 최대 강수량은 현재 182.4㎜에서 56% 증가한 284.1㎜ 수준으로 전망됐다. 집중호우가 잦아지는 데다 호우 강도도 훨씬 강해지는 것이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은 “6월 말 장마 시작부터 9∼10월 태풍까지 제주도가 모든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면서 강수량도 그만큼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계절 지속기간도 변한다. 고탄소 시나리오상 현재 평년 기준 97일인 여름은 금세기 후반이면 170일로 73일 늘어난다. 저탄소 사회로 전환될 경우 여름은 129일로 현재보다 한 달가량 길어지는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기후적으로 여름은 일평균기온이 20도를 넘는 시기를 말한다. 일평균기온이 5도를 밑도는 계절인 겨울은 현재 107일에서 금세기 후반기이면 저탄소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길어야 82일 지속될 전망이다. 고탄소 시나리오의 경우 가장 짧게는 39일만 ‘겨울’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먼 미래에 겨울은 3개월도 안 되는 셈인데 탄소배출이 줄지 않으면 겨울이 한 달 남짓까지 줄어들 수 있다.
다만 남한에서 추위가 자취를 감출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 변 팀장은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아열대 기후에 해당하는 기후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지만, 한파가 발생할 가능성까지 줄진 않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