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은 사진으로 찍힐 만해요. 사진의 좋은 점은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겁니다. 온갖 것을 음미할 수 있게 해주죠.”
‘컬러사진의 선구자’, ‘뉴욕의 전설’, ‘거리 사진의 대가’ 사울 레이터의 말이다.
“이렇게 특별한 눈을 가진 사진작가가 어떻게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는지 믿을 수 없었다”는 리치 감독은 “놀라울 만큼 뛰어난 색채와 프레임 감각을 지닌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찍은 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 세련된 것들인데 무려 70년 전 촬영한 사진들”이라면서 “왜 그는 더 일찍 유명해지지 않았던 걸까 등의 해답을 듣는다”고 연출의도를 밝힌다.
“평생 유대인을 직업 삼아 살긴 싫다고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했죠. 탈무드 학자셨는데.”
1923년 미국 피츠버그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난 사울은 뒤를 잇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20대에 뉴욕으로 이주해 줄곧 살아왔다.
“난 그저 남의 집 창문이나 찍는 사람이예요. … 나름대로 괜찮은 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걸로 잘난 척하면 안 돼죠. 근사한 작품을 만든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 난 남들이 추켜세운다고 혹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겸손을 앞세우는 사울이 훌륭한 사진작가로 워커 에번스, 외젠 앗제, 앙드레 케르테츠 등을 꼽았지만 뉴욕현대미술관은 ‘언제나 젊은 이방인’이란 제목으로 그의 작품들을 전시한 바 있다. 영화는 우리가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할아버지처럼 친숙한 노작가의 회고에서는 삶의 경험도 묻어난다.
“물건이란 한때 내 것이었다가 다른 사람한테 가는 거예요. 죽을 때 가져갈 수 없잖아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뭘 갖느냐가 아니라 뭘 버리느냐 입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들도 실은 그리 걱정할 게 아니에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찾는 게 중요해요. 세상의 근사한 것들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거요. 변명하지 말고 당당하게 즐겨야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삶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거인이 되어 있다.
지나가는 버스, 상점의 쇼윈도, 이정표 등 거리의 표정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영상 또한 그의 사진 스타일과 결을 맞춘다.
영화는 ‘사울 레이터의 인생에서 배우는 13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카메라, 컬러사진, 후대에 남길 것, 신에게 이르는 길, 사진을 진지하게 대하다, 가만히 있기, 길 위의 사진가, 그저 열심히, 기분좋은 혼란, 왼쪽 귀 간지럽히기, 예술을 나누다, 서두를 것 없어, 아름다움을 찾아서 등 작은 제목으로 나누지만 굳이 이 같은 구분을 의식하며 볼 필요는 없다.
그의 사진은 이미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지구촌 곳곳에서 사랑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남산 전시공간 피크닉이 내년 3월27일까지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란 주제 아래 관람객을 맞고 있다. 국내 전시는 처음이다. 미공개 슬라이드 필름과 50∼70년대 패션 화보, 그림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간 그의 예술적 시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 2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