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반성과 새로운 다짐

오랜만에 냉장고 정리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꽉꽉 들어차 있는 냉동고를 정리했다. 얼마나 잘 먹고 살겠다고 그리 쟁여 놓았을까. 꺼내는데 끊임없이 나왔다. 하긴 아픈 동생을 위해 이것저것 사다 넣어놓았고, 있다는 걸 잊고 또 사기를 반복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빈틈도 없이 채워져 있는 냉동음식들을 꺼내놓고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언제 넣어놓았는지 모를 건강식품에서부터 철지난 과일까지. 어떤 것은 지인이 직접 재배하거나 만든 것이라고 해 욕심껏 주문해 넣어두었고, 어떤 것은 세일찬스를 이용해 아낌없이 사다 넣어두기도 했다. 그것들을 정리하는 데 난감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야 잘됐다 싶어 망설임 없이 폐기처분하면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처치곤란했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 사람도, 또 먹을 시간이 없었다.



일정한 기간 냉동실 파먹기를 작정하고 장을 보지 않으면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동생을 먹이기 위해서는 그 또한 여의치 않는 일이었다. 먹을 것과 버릴 것을 분류하고 나서도 먹을 것의 양이 상당했다. 먹고 탈이 나는 것보다 오래되고 이상하다 싶으면 아낌없이 버리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미국의 원조구호품을 받으며 유년기를 보냈던 나는 음식물을 버리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꽁꽁 언 채 수북하게 쌓여 있는 음식물 봉지들을 보고 있으려니 죄책감마저 들었다. 너무 과했다는 반성과 함께 그제야 진심으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랬다. 우리 식구가 먹을 양보다 더 많은 먹을거리가 생기면 그걸 쟁여두지 않고 정성껏 담아 이웃에 돌리곤 했다. 그것도 우리가 먹을 것보다 더 때깔이 좋고 머드러기만 골라 나눠 주곤 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난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쟁여두었다가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 먹으면 좋으련만 왜 그 아깝고 좋은 걸 타인과 나누는지. 왜 우리가 먹을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골라 주는지 그게 못마땅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냉장고 사정이 좋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어머니는 그걸 여투어 둔다 해도 결국 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았던 것이다. 나도 어머니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는 음식물을 이웃과 나눌까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신선하고 때깔 좋고 먹음직스러운 것을 나눈다면 좋을 일이었지만 냉동고에서 묵은 음식을 나누는 일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다.

주변에 누구나 필요하면 가져갈 수 있는 푸드뱅크 냉장고가 있다면 거기에 넣어두어도 좋겠지만 아파트 주변에 그런 푸드은행 냉장고는 없다. 나에게는 필요없지만 당장에 누군가에게는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데, 그걸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더 다양하게 생겨나면 좋겠다. 각성하고 다음부터는 먹을 만큼만 구입하고, 제철 음식은 여투어 두지 않으며, 내가 먹을 양보다 더 많이 생겼을 때는 망설임 없이 이웃과 나눠야겠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