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통가 인근에서 해저화산이 역대급 규모로 폭발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앞서 강릉시 앞바다에서 심해어 산갈치가 잡힌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화산 폭발의 전조였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동물들의 이상행동과 재해 사이의 인과성이 입증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지난 15일 통가 수도 누쿠알로파 북쪽 65㎞ 해역에서 해저화산이 폭발했다. 통가를 비롯한 인근 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호주, 일본 등에도 쓰나미 경보가 발령될 정도로 대규모 분출이었다. 당시 굉음은 쓰나미에 1만km 떨어진 미국 알래스카에도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화산 폭발 후 쓰나미에 직격된 통가의 정확한 피해 상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해저화산 폭발이 한국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기상청에 따르면 화산이 분화한 다음날 제주 서귀포와 남해안 해수면의 흔들림은 10㎝ 안팎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남태평양과 한국 사이 일본이 자리한 데다 수심 200m 이내의 얕은 남해를 지나면서 쓰나미 에너지가 감소하고 전파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해저화산 분출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에서는 지난 8일 강원 강릉시 앞바다에서 한 낚시꾼이 잡은 산갈치에 관심이 집중됐다. 산갈치는 한국과 일본, 태평양, 인도양 등에 서식하는 심해성 어류다. ‘심해어가 연안에 오면 지진의 전조’라는 속설이 있어 누리꾼들은 “쓰나미 뉴스 보고 다시 왔다”, “산갈치가 육지로 올라온 이유가 있었다”, “해저화산 폭발의 전조였다” 등의 반응을 내놨다.
앞서 산갈치가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지진이 일어나기 전 산갈치가 위쪽 물로 올라온다”며 지진의 전조라는 우려가 이어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심해어가 심해에서 표층으로 올라오는 것과 지진·화산 폭발 등 재해 간의 연관성은 밝혀진 게 없다고 설명했다.
어재선 경동대 교수(해양심층수학과)는 “심해에는 먹이가 부족해서 먹이활동을 하려고 표층으로 심해어가 올라왔다가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같은 이악어목의 심해어 산갈치와 투라치가 파도에 밀려 해안에서 발견되거나 포획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 교수는 “이를 지진의 전조라고 보기는 어렵고, 일본에서도 관련 연구가 있었지만 입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해저폭발과 관련해서도 그는 “쓰나미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폭발 전에 이를 예측해서 동물들이 이상행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의 한 대학 연구팀은 1928~2011년 8종의 심해어가 뭍에 닿거나 포획된 336건과 이 기간 발생한 221회의 규모 6(매그니튜드) 이상 지진과의 관련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그럴듯한 관련성이 있는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심해어 출현과 지진 사이의 상관관계는 거의 확인할 수 없다”며 “속설은 미신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 결과는 2019년 6월 미국지진학회지에 실렸다.
이처럼 동물의 이상행동과 지진 등 재해 사이의 인과성에 대한 연구가 국외에서 다수 진행되고는 있지만 아직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진 못했다. 다만 관련 데이터베이스가 미비해 연구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과학적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2017년 이소희·박영진 연구팀은 한국재난학회에 발표한 ‘동물 이상행동과 지진 전조 가설검증 연구동향 및 한계점’ 논문에서 데이터 신뢰성 검증과 적합한 데이터 확보, 외부 환경요인 통제 등이 어려워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다’, ‘없다’로 결론 낼 수 없다고 했다.
연구팀은 “동물 이상행동과 지진 발생 간의 연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가설설정 및 검증연구는 아직 기초단계”라며 “인과관계 검증을 위해서는 다양한 재난사례별 신뢰성 있는 다수의 데이터와 연구사례, 실험결과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