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다 먹으라고 화냈어. ‘싫어요’ 했는데 먹으라고 했어. 입을 막았는데 ‘입 열어!’ 하면서 내 손을 뺐어.”
이모(35)씨는 지난해 5살 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딸 A양은 유치원 담임교사였던 B씨가 강제로 밥을 먹였다고 이야기했다. 더 이상 못 먹겠다고 손으로 입을 막으면 그 손을 내리게 하고 입에 억지로 밥을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아이가 결국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에 밥을 토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A양은 또 B씨가 갑자기 다른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자신에게 화를 냈다고도 얘기했다. 수업시간에 다른 색으로 색칠했다는 이유였다. 아이는 선생님이 무서워 오랜 기간 이런 이야기를 숨겼지만, 다른 선생님이 학대 관련 일로 아이에게 사과하고 퇴사하는 것을 본 뒤 “그 선생님도 나에게 사과했으면 좋겠다”며 엄마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23일 보건복지부의 ‘2020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2020년 정서학대 발생 건수는 8732건으로, 전년(7622건)에 비해 14.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체학대 사례가 8.9%, 성 학대가 21.3%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가파른 증가세로, 2016년(3588건)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아동기의 정서학대는 신체학대만큼이나 큰 후유증을 남긴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학대 입증은 쉽지 않다. C씨의 아이는 지난해 봄 어린이집에서 정서학대를 당해 PTSD 진단을 받았다. C씨는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지만, 사건은 재판조차 가지 못했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C씨는 “진단서와 폐쇄회로(CC)TV 등 증거를 최대한 제출했지만 무혐의 판단이 나왔다”며 “증거를 제출하는 과정도 고통스러웠는데 그런 노력이 다 헛된 일이 된 것 같다. 아이는 사건 후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정서학대 판단에 아동 진술이 핵심적이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정서학대는 지속적인 경우가 많아 아동에게 신체학대보다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면서 “성폭력 사건에서 아동 증언이 인정되는 것처럼 학대에서도 아이가 정확히 진술하고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면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