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모서 뜨고 내린다”…공간 제약 깨고 바다로 나선 드론 [박수찬의 軍]

미국의 X-47B 무인전투기가 핵항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 비행갑판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고도 먼 거리를 날아가는 드론은 군과 민간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바다 한복판에서는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 파도에 흔들리는 선박에서 드론이 뜨고 내리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드론의 이착륙이 주로 지상에서 이뤄졌던 이유다.

 

하지만 무인화 기술이 발전하면서 바다에서도 드론을 사용할 여건이 갖춰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항공모함의 효용성이 주목을 받는 모양새다. 구축함보다 훨씬 넓은 비행갑판과 항공기 이착륙 시스템을 갖춘 항모는 드론을 운용하기가 쉽다. 

 

저렴하고 인명 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기존 전투기 대신 드론을 싣고 다니는 ‘드론 항모’가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드론을 해상작전에 써보자”

 

드론을 항모에서 운용하는 방안은 세계 각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은 앞서 2013년 무인전투기 X-47B를 핵항모에 착륙시키는데 성공한 이후 해상작전에서 드론 사용을 확대하는 추세다.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전례를 뒤따를 태세다. 특히 항모용 전투기 확보가 어려운 국가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태국은 지난해 말에 1만1000t급 경항모 차크리 나루에벳호에서 자국산 마커스-B(MARCUS-B) 수직이착륙 드론을 운용하는 시험을 실시했다. 

태국의 마커스-B 수직이착륙 드론이 태국 해군 경항모 차크리 나루에벳호 갑판에서 이륙하고 있다. 유투브 캡처

배터리로 작동하는 마커스-B는 2시간 동안 최대 시속 68㎞로 비행이 가능하다. 태국은 추가 시험을 거쳐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스페인이 건조해 1997년 태국 해군에 인도된 차크리 나루에벳호는 함재기로 도입한 중고 해리어 수직이착륙 전투기가 극심한 노후화로 2006년 퇴역한 직후 경항모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함재기 대신 헬기를 운용했지만, 그나마도 선체 크기가 작아 대량 운용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재난 구호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쳤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드론 운용은 차크리 나루에벳호가 드론을 이용한 해상작전 플랫폼으로 활용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다. 예전부터 수직이착륙 드론 도입을 요구했던 태국 해군은 경항모를 포함한 주요 함정에서 드론 사용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주도 F-35 스텔스 전투기 프로그램에서 배제된 터키는 건조 중인 항모형 강습상륙함 아나돌루함(2만7000t)에 자국산 바이락타르 TB2 드론을 해상작전에 적합하게 개조한 기종을 탑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터키의 바이락타르 TB2 무인기가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F-35 공동개발국이었던 터키는 아나돌루함에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전투기를 탑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산 S-300 지대공미사일을 도입하면서 F-35 프로그램에서 축출됐다.

 

이에 터키는 바이락타르 TB2를 개조한 TB3를 개발, 아나돌루함에 탑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다른 고정익 전투기로 대체하면 항공기를 이륙시키는데 필요한 사출장치를 장착해야 하는데, 이는 대대적인 설계 변경이 뒤따른다. 건조 기간과 비용도 늘어난다. 가능한 이른 시기에 함정을 전력화하려는 절충안인 셈이다.

 

TB3는 비행갑판 아래에 있는 격납고에 수납할 수 있도록 날개를 접는 기능이 추가된다. 해안에 있는 레이더나 지대함미사일, 바다에 떠 있는 적의 군함 등을 공격하게 된다. 최대 10대의 TB3가 동시에 작전 투입이 가능하도록 아나돌루함의 지휘통제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터키가 제작한 바이락타르 TB2 드론은 2020년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를 상대로 치른 전쟁에서 활약해 주목을 받은 무기다. 아제르바이잔군은 바이락타르 TB2로 아르메니아 전차와 야포, 방공무기 등을 파괴했다. 이후 이라크, 카타르, 모로코, 폴란드 등 많은 국가들이 도입을 결정했다.

 

영국은 퀸 엘리자베스급 항모(6만4000t)에서 고정익 드론을 사용을 시험하기 위한 ‘프로젝트 빅센’을 진행하고 있다. 

 

함재기인 F-35B의 작전을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는 공중조기경보나 전자전, 공중급유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국 해군은 이외에도 정보, 감시, 정찰을 위한 저가의 고정익 드론을 조달하는 ‘프로젝트 벰파이어’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벤시 드론이 항모 프린스 오브 웨일즈호 갑판에서 시험비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영국 해군 제공

◆비용 절감·인명 피해 위협 감소

 

항모에서 드론을 활용하는 개념이 확산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이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항모를 건조하고 함재기를 탑재한 뒤, 해상작전에 투입하는 과정은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 

 

항모에서 쓰이는 함재기는 라팔, F-18,  F-35, 미그-29K, J-15 등에 불과하며 공군 전투기보다 생산량도 적어 대당 가격이 비싸다. 함재기의 작전 및 운영 비용은 항모를 유지하는 부담을 키운다. 

어뢰를 장착한 드론이 영국 항모 프린스 오브 웨일즈호 갑판에 놓여 있다. 영국 해군 제공

일반 함재기보다 도입 및 운영유지비가 훨씬 저렴한 드론은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하다. 리퍼나 글로벌호크 정도의 무인기를 제외하면, 대다수 드론은 도입 및 운영유지비가 매우 낮다.

 

드론은 함재기를 넉넉하게 탑재할 수 없는 중소형 항모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중소형 항모는 E-2D 조기경보통제기나 EA-18G 전자전기 등 항모의 공중작전을 지원할 자산을 사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전자기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정찰 및 전자전 장비의 소형화, 경량화가 가능해진 상황을 감안하면, 일반 항공기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드론도 제한된 수준이나마 조기경보, 전자전 능력 확보가 가능하다. 

 

경항모나 스키점프대를 갖춘 강습상륙함을 보유한 국가에서 정찰이나 소규모 타격 작전 등에 드론을 투입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 해군 운용요원들이 MQ-8B 무인헬기를 살펴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항모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단의 원양 훈련에서도 드론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유사시 항모를 향해 접근할 적 항공기나 미사일을 요격하는 방공 훈련은 항모 전단에게 있어 필수다.

 

본토와 인접한 해역에서는 공군이 가상 적군을 맡을 수 있지만, 원양에서는 함재기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드론으로 대체하면, 비용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는 드론은 적진에 추락해도 인명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적에게 요격될 위험이 큰 작전에 함재기 대신 드론을 투입하면 조종사가 적에게 생포될 가능성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한국형 경항공모함 상상도. 현대중공업 제공

한국도 2030년대 초반 전력화를 목표로 3만t급 경항모 건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함재기로는 F-35B가 유력하며, KF-21을 개조한 기종을 탑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드론 사용이 확대되는 세계적 추세에 맞게 감시정찰이나 소규모 타격작전 등에 쓰일 드론을 탑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F-35B를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운영유지비를 절감하고 F-35B의 작전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드론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항모 설계 과정에서 무인 무기의 사용이 얼마나 반영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