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가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벚꽃 피는 순서대로 학교 문을 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과거 웬만한 서울지역 대학 못지않은 위상을 자랑했던 지방 거점 국립대도 대부분 초라해진 상태고, 지역의 사립대 상당수는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발만 구르고 있다.
2일 교육계에 따르면 2022학년도 입시에서 1대 0 미만의 경쟁률을 기록한 대학은 모두 19곳으로 나타났다. 경쟁률이 미달인 학교는 지난해 9곳에서 올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부산의 신라대와 영산대의 2022학년도 경쟁률이 1대 1을 밑돌았고, 광주의 광주여대와 광신대, 호남대 등에서도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정원보다 적었다.
◆격차 벌어지는 지방대
하지만 지방 국립대조차 미달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부산대의 2021학년도 경쟁률은 3.24대 1까지 낮아졌다. 지난해 입시에서 충남대 경쟁률은 3.30대 1에 불과했고, 전남대는 3.16대 1까지 떨어졌다. 경북대와 제주대 등도 모두 3대 1 수준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학원가에서 ‘입시 설명회를 할 때 특히 부산대 출신 학부모로부터 대학 배치표가 뭔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항의성 질문을 받는 건 연례행사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방 국립대의 경쟁률 하락세는 일단 멈춘 상태다. 2022학년도 입시에서 부산대와 경북대가 5대 1 수준으로 경쟁률을 회복했고, 충남대와 제주대, 강원대에서도 4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하지만 경쟁률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을 뿐, 상황은 나아진 게 없거나 더 나빠진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올해 지방 국립대 경쟁률이 상승했다는 점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의 대학과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점”이라며 “지방대 경쟁률이 떨어진 만큼 서울권 대학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2022학년도 지방권 대학의 정시 경쟁률은 2.73대 1에서 3.33대 1로 상승했지만 서울의 대학과 경쟁률 차이는 2.38대 1에서 2.79대 1로 더 벌어졌다.
◆서울 집중화와 지방대의 위기
지방대의 위기는 지나친 서울 선호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무리 좋은 학교라고 하더라도 지역으로 내려갈 경우 곧바로 학교의 위상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같은 연세대 의대지만 신촌캠퍼스와 미래캠퍼스의 성적이 차이가 나는 것 역시 서울에 있고, 없고의 차이”라며 “서울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서울의 대학이 실력과 상관없이 지방의 대학보다 높은 평판과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우 소장은 “연세대나 고려대가 각각 지방으로 내려가도 그 위상은 금세 낮아질 것”이라며 2007년 서울 한남동 캠퍼스를 경기 용인 죽전으로 옮긴 단국대 사례도 언급했다. 단국대는 당시 비좁은 서울캠퍼스에선 양질의 성장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과감하게 ‘인(in) 서울’을 벗어나 4배 가까이 큰 죽전캠퍼스로 옮겼다. 이후 교육·연구 환경 등을 크게 개선했지만 대입 수험생들의 선호도는 캠퍼스가 서울에 있을 때보다 많이 낮아졌다는 게 입시업계의 평가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수(교육학)는 “사회, 문화 인프라가 모두 서울에 집중돼 있어서 서울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산업과 연계해서 젊은이들을 육성해야 하는데 지방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데다 지방에는 눈에 띄는 일자리도 없다”고 말했다.
◆대학 시스템 개편해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대학시스템을 제대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수는 “일제의 경성제대는 서울대가 됐고 연세대와 고려대 또한 사립전문대학들의 전환으로 세워지는 등 설립 순서가 곧 대학의 서열이 됐다”며 “우리나라가 대학체제를 제대로 설계해 본 적이 없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립대가 전국에 산재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중심적인 대학체제로 자리 잡지 못했다”며 “응용과학대학은 광역지방정부가, 개방적 시민대학은 기초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 1인당 학생수 서울대 15명·충남대 25명… 재정 편중 개선을
전문가들은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방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재정을 편성하고, 지역 공공기관에서 현지 인재를 50% 이상 채용하는 등의 지원방안을 강화하면 지방대와 지방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것이다.
2일 대학알리미 등에 따르면 지방 국립대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서울대보다 5명 이상 많은 수준이다. 서울대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15.0명이다.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가장 많은 국립대는 충남대로 25.5명이고, 충북대는 24.6명으로 집계됐다. 이어 △부산대 23.4명 △경북대 23.3명 △전남대 20.5명 등 순으로 조사됐다.
교육비 격차는 더 컸다. 서울대 교육비는 1조2575억원이었지만 부산대는 5232억원으로 서울대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서울대의 1인당 교육비를 100으로 가정할 경우 부산대는 40.7 수준이었고 나머지 국립대는 모두 30 수준에 불과했다.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수는 “지방 국립대 교수의 연구역량이나 학습역량이 부족하지 않은데, 서울대 중심의 대학재정 편성이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라며 “국가교육위원회에 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하거나 독자적인 기구를 설립해 고등교육의 빅픽처를 총괄하고 기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적 지원과 함께 지방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지역인재 채용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산대에 따르면 차정인 총장은 지방 공공기관에서 지역인재를 의무적으로 50% 이상 채용하는 법안을 제시하기 위해 유기홍 의원실 등 국회와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30%인 지방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의무 채용 비율을 50%로 늘리면서 여기에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외 인재를 추가로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차 총장이 제안한 법안의 골자다. 전남 나주에 있는 한국전력공사를 예로 들면 나주에서 30%의 신입직원을 뽑고 나머지 20%를 충청도나 경상도 등에서 의무적으로 채용한 뒤 나머지 50%를 서울이나 수도권 인재를 선발하는 식이다.
이 같은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이유는 지방의 바닥난 일자리가 지역인재의 서울 유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이 지난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고용보험취득자는 서울이 31.8%, 경기와 인천이 26.4%로 전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충청은 9.7%, 호남은 7.8%에 불과하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도 결국 좋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제해치 부산대 홍보팀장은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50%를 선발하면 채용하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며 “역차별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방은 소멸하게 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