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의 탈을 쓴 ‘탐욕’… ‘가짜 과학’을 고발하다

‘줄기세포 배양’ 성공 밝힌 황우석
연구사진 조작 등 거짓 논문 들통

검증 시스템 사람 관계서 좌우 돼
과학과 욕망이 사기로 둔갑 쉬워

“과대포장 경계… 겸손한 과학 필요
연구 데이터 공개해 윤리 지켜야”
영국 심리학자 스튜어트 리치는 신간에서 “모든 과학적 연구가 확고한 사실들에 기반하고 있기를 바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2004년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를 일으킨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모습.

 

사이언스 픽션/스튜어트 리치/김종명 옮김/더난출판/1만7000원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연구팀은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다. 오늘날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알려진 심리학 실험이다. 연구팀은 실험에 지원한 24명을 교도관이나 수감자로 무작위 분류한 뒤 가짜 감옥에서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 실험은 시작한 지 6일 만에 종료됐다. 교도관들의 가학적인 학대와 수감자들의 반란으로 실험을 이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연구를 주도했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교도관들이 가한 학대와 고문은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상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9년 공개된 녹취록에는 짐바르도가 교도관들에게 수감자의 화장실 이용 금지와 같은 구체적 학대 지침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심리학자 스튜어트 리치는 이 실험을 두고 “연극을 하듯 만들어진 연구 결과는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인 역할을 맡게 됐을 때 유기적이고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 사례와는 당연히 차이가 날 것”이라며 “과학적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결과”라고 말한다.



신간 ‘사이언스 픽션’은 허위나 과장된 논문이 판을 치고,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과학계의 현실을 꼬집는 책이다. 가장 객관적이고 명료할 것이라 기대하는 과학이 실제로는 ‘유레카’를 외치는 허상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저자 리치는 “모든 과학적 연구가 미래에 결코 뒤집을 수 없을 만큼 확고한 사실들에 기반하고 있기를 바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스튜어트 리치/김종명 옮김/더난출판/1만7000원

국내에서도 2004년 과학계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일이 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인간 체세포를 이용해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황 전 교수의 연구 성과는 당뇨와 파킨슨을 앓는 환자들에겐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하지만 논문이 가짜라는 사실은 1년여 만에 들통났다. 논문에서 각기 다른 세포라인으로 제시된 사진은 같은 사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연구 자체가 조작이라는 내부 고발자의 폭로가 나왔다.

이런 일부의 사례로 과학계 전체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연구의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며 연구 윤리를 저버리는 일은 관행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일례로 하나의 실험에서 얻은 연구 결과를 여러 개로 쪼개 논문으로 발표한 경우도 있다. 인간의 염색체 23쌍을 분석한 뒤 23건의 논문을 쓰는 방식의 ‘살라미 슬라이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원에 따르면 1928∼2011년 철회된 논문 4449건의 철회 사유는 ‘의심스러운 데이터·해석’이 42%, ‘데이터 조작 등 연구 부정행위’가 20%에 달했다.

저자는 이런 시스템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과학이 ‘사회적 구조물’이란 점을 짚는다. 하나의 연구가 논문으로 발표되는 과정에는 동료평가를 비롯한 검토와 검증을 거치는데,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현되지 않으면 과학이 아니다’는 명제는 쉽게 잊혀진다. 황우석 스캔들도 과학계 저명 인사들의 검토와 검증이 있었지만, 그들은 논문이 가짜라는 것을 제대로 분별해내지 못했다. 획기적인 연구 결과로 학계의 인정과 명성을 얻으려는 과학자의 욕망과 과학계의 허술한 시스템이 만나 ‘가짜 과학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저자는 “만약 과학계가 자랑하고 있는 동료평가 시스템이 신뢰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과학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이어 “반복 재현성은 오랜 기간 과학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면서 “현대 과학계로 넘어오는 과정 어딘가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반복 재현성의 중요성에 대해 망각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재현 불가능한 연구들로 과학 문헌이 가득 차게 됐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오픈 사이언스’다. 연구 과정의 데이터를 공개해 연구 윤리의 추락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는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과 추가 연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는 “눈에 띄는 연구 결과에만 관심을 두려는 우리의 본능을 다스리고, 당장은 덜 흥분되더라도 좀 더 견고한 결과를 중요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새로운 연구 결과를 둘러싼 과장을 자제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과학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따분할지라도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가 흥미진진하되 공허한 결과를 이긴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과학을 다시 지루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