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드린다”는 김혜경 구체적 해명은 안해…논란 잠재울지 미지수

의혹 사실관계 해명 없이 수사 통한 책임만 언급 / 대리처방, 음식배달 등 질문 잇따랐지만 ‘묵묵부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부인 김혜경씨가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잉 의전 논란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9일 남편의 경기지사 재임 시절 도청 공무원들의 과잉 의전과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지난달 28일 김씨의 사적 심부름에 도청 공무원이 동원됐다는 첫 언론보도 이후 12일 만에 국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것이다.

 

뉴시스에 따르면 자신에게 제기된 숱한 의혹들에 대해 "사과한다", "죄송하다"는 메시지만 내놓았을 뿐 구체적인 해명은 없었다는 점에서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김씨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700자 분량의 사과문을 낭독했다.

 

지난 2일 과잉 의전과 개인 심부름 지시 의혹에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를 통해 입장문을 발표한지 일주일 만의 전격 사과 기자회견이었다.

 

이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서 송구하다"고 사과한 뒤에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이 터지며 여론이 악화되고 이 후보도 지지율 정체 상태에 놓이자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그러나 김씨는 이날 사과문에서 관련 의혹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며 사실관계에 대한 해명도 하지 않았다. 자신과 이 후보가 관여돼 있는지 역시도 밝히지 않고 수사 및 감사를 통한 책임만 언급했다.

 

김씨 관련 의혹은 경기도청 전직 7급 주무관 A씨가 자신의 상관이었던 전직 5급 사무관 배씨와 나눈 문자 등을 언론에 제보하면서 촉발됐다. 이 후보의 경기지사 시절 배씨와 A씨는 의전 업무를 위해 각각 비서실과 총무과 소속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는데 이 후보가 대선 출마를 위해 경기지사직에서 사퇴함에 따라 현재는 두 사람 모두 퇴직한 상태다.

 

A씨가 제보한 의혹은 ▲김씨의 약품 대리 처방 ▲이 후보 부부 장남의 대리 퇴원수속 및 관용차 사적 사용 ▲김씨의 병원 방문시 코로나 문진표 대리 작성 ▲음식 배달 등의 개인 심부름 ▲이 후보 모친 제사 음식 심부름 및 공금 유용 ▲소고기 등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등이다.

 

김씨는 기자회견에서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배 모 사무관은 오랜동안 인연을 맺어온 사람이다. 오랜 인연이다보니 때로는 여러 도움을 받았다"며 "공직자의 배우자로서 모든 점에 조심해야 하고 공과 사의 구분을 분명히 해야 했는데 제가 많이 부족했다"고 사과했다.

 

이어 "제가 져야 할 책임은 마땅히 지겠다. 수사와 감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선거 후에라도 제기된 의혹에 대해 성실하게 설명드리고 끝까지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관련 의혹들을 거론하지 않자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는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을 비롯해 어떤 사실관계에 대한 사과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씨는 "지금 수사와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실체적인 진실이 밝혀지면 질때까지 최선 다해서 협조하고 그에 따라 결과가 나오면 응분의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질 것"이라고만 답하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김씨가 회견장을 나가면서 취재진으로부터 '약물 대리처방 의혹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황제 의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집으로 배달됐다는 음식은 가족들이 먹은 것이냐', '공사 구분이 안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냐',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냐' 등 개별 의혹들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김씨는 입을 굳게 닫은 채 당사를 떠났다.

 

결국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사실관계 소명 없이 무엇이 죄송한지도 모를 사과만 남은 회견이었던 셈이다.

 

김씨는 또 제보자 A씨에 대해서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서도 "A씨는 제가 경기도에 처음 왔을 때 배씨가 소개해 줘서 첫 날 인사하고 마주친 게 다이다. 그 후에는 소통하거나 마주친 게 없다"고 했다.

 

배씨로부터 공과 사의 경계를 넘어선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A씨와는 잘 모르는 관계라며 지시 연관성을 부인한 것이다.

 

민주당 선대위도 김씨처럼 구체적인 의혹의 사실관계에 대한 해명은 피한 채 수사·감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취했다.

 

박찬대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김씨의 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하나하나 해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특히 법인카드 사용과 관련된 부분은 분명하게 수사기관에서 수사가 진행될 것이고 감사 절차도 진행되고 있으니 그 결과를 살펴보시면 될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을 하나하나 다 해명하다보면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김씨가 그동안 본인과 민주당의 해명이 석연치 않은 점을 남기며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거나 국민 정서에 어긋나 역풍을 불러온 점을 고려해 일부러 구체적 언급을 피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의약품 대리 처방 의혹과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김씨가 호르몬제를 처받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지난해 4월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갱년기 여성들에게 처방되는 호르몬제 168일치를 처방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고 A씨가 대리 구매한 약을 김씨의 집 문에 걸어놓고 사진을 찍어 배씨에게 보고했다는 제보도 나오며 해명의 진정성을 의심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