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편리함 알면서도 사용 기피… 자연스럽게 ‘행동의 변화’ 이끌어

(37) 쇼핑카트로 본 제품의 개발과 성공

탄생 90년 동안 변하지 않는 성공작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대중화 교훈

처음엔 수레·유모차로 부정적 인식
시범 보여주니 너도나도 따라서 해

치밀한 관찰·계획… 행동 변화 유도
경쟁은 개선 부르고 결국 고객 이익
실반 골드먼이 처음 개발한 쇼핑카트의 모습. 접이식 의자와 같은 모양의 틀에 바퀴를 달고 장바구니를 얹어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는 컴퓨터에서 저장(Save)을 의미하는 아이콘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 세대가 태어나 자라던 시점에는 플로피 디스크가 이미 자취를 감췄고, 사람들은 USB 메모리 스틱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온라인 매장에서 ‘장바구니에 담기’를 의미하는 아이콘은 잘 알고 있다. ‘쇼핑카트(shopping cart)’라고 불리는 이 바퀴 달린 물건은 수십 년 동안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세계 어디서나 대형 매장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쇼핑카트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지 90년이 다 되어가 그 형태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불편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는 얘기이고, 그만큼 사용자의 필요를 잘 충족시켜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쇼핑카트는 누가, 어떻게 발명하게 되었을까. 언뜻 보면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물건이지만 발명과 대중화 과정을 살펴보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처음 고안해낸 사람은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식료품 매장 주인 실반 골드먼이었다. 그는 당시 미국 남부에 퍼져 있던 ‘험프티 덤프티’라는 식료품 체인이 파산하는 것을 보고 이를 인수해서 흑자로 전화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인수를 완료한 해는 1934년으로 시기가 좋지 않았다. 미국이 대공황(1929~1939)에 빠진 상황이었고, 불황으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허리를 졸라매며 절약을 했기 때문에 싼 것만 골라서 구매하고 있었다. 골드먼은 당장 손님들이 물건을 더 사지 않으면 이윤을 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골드먼은 소비자를 관찰하기로 했다. 물건을 팔려는 사람이 고객의 행동을 관찰하는 건 마케팅의 교과서처럼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도 이를 제대로 하는 기업이 드물다는 점에서 1930년대에 골드먼의 관찰은 대단한 일이었다. 이게 첫 번째 교훈이다.

혼다 자동차는 1990년대 중반에 미국 시장을 겨냥한 미니밴 ‘오디세이’를 내놓았지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왜 우리 제품을 사지 않을까’라는 고민에 빠진 혼다의 미니밴 개발팀은 학교 주변에 자리를 잡고 망원 카메라를 동원해 ‘사커맘’들이 아이들을 태우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엄마들이 원하는 기능의 리스트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수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있었지만, 그렇게 탄생한 2세대 오디세이는 큰 히트를 쳤다.

그렇다면 골드먼이 고객 관찰을 통해 알아낸 건 뭘까. 1930년대만 해도 손님들은 손에 드는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서 계산대로 가져가곤 했는데, 골드먼이 살펴보니 손님들은 바구니가 무거워져서 들기 힘들어지는 시점에서 쇼핑을 멈추고 계산대로 가는 것이었다. 이를 본 골드먼은 가설을 하나 세운다. ‘만약 무게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물건을 더 살 것이다’라는 것. 그리고 이 가설에 바탕을 둔 개선책을 마련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접이식 의자의 틀처럼 생긴 다리에 바퀴를 붙이고 그 위에 슈퍼마켓의 장바구니를 올려놓게 한 것이다. 직접 들지 않고 밀기만 하면 되니 힘이 덜 들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살 게 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아무도 쇼핑카트, 즉 ‘바퀴 달린 장바구니’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한번 사용해 보면 누구나 편리함을 알 텐데 왜 쓰지 않았을까. 여기에 두 번째 교훈이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걸 모른다는 것이다.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는 “만약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골드먼이 그 이유를 알아보니 남자들은 ‘장바구니 하나 들 힘이 없어서 수레를 끄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서였고, 여자들은 ‘지긋지긋한 유모차를 미는 것 같아서’ 싫다는 것이었다.

고객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골드먼은 가짜 고객을 고용해서 쇼핑카트를 사용하게 했다. 이들이 처음 보는 쇼핑카트를 자연스럽게 밀고 다니는 걸 본 손님들은 하나둘 쇼핑카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게 세 번째 교훈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물건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는 ‘행동의 변화’가 요구되고, 이런 변화는 단순히 지갑을 열어서 돈을 지불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그래서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특히 그 변화가 자신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면 더더욱 그렇다.

애플의 블루투스 이어폰인 에어팟(Airpods)은 애플 최대 히트제품 중 하나가 되었지만 처음 출시된 2016년만 해도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마치 애플 이어폰에서 끈을 잘라놓은 것 같은 특이한 디자인을 두고 귀에 전동칫솔, 담배를 꽂은 것 같아서 꼴사납다는 조롱이 쏟아졌고, 훨씬 더 싼 유선 이어폰이 멀쩡하게 작동하는데 왜 비싼 돈을 주고 우스운 물건을 사겠느냐며 실패할 거라는 전망이 흔했다.

이런 상황을 바꿔 놓은 건 2년 후 러시아에서 열린 2018 월드컵이었다.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서면서 일제히 에어팟을 귀에 꽂고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에어팟에 대한 이미지가 180도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모델처럼 잘생긴 선수들이 사용하는 거라면 나도 사용하겠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스폰서를 하지 않은 애플이 2018 월드컵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1940년대 올라 왓슨이 개선한 쇼핑카트는 뒤판에 경첩을 달아 앞의 카트 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게 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카트를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골드먼의 끈질긴 시도 끝에 쇼핑카트가 인기를 끌면서 매상이 올랐지만 쇼핑카트의 역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약 10년 후 미국의 발명가 올라 왓슨은 골드먼의 쇼핑카트가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관리가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에 착안해 카트 뒷부분에 경첩을 달아 뒤판이 접힐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좁은 공간에 차곡차곡 밀어넣을 수 있는 현재와 같은 쇼핑카트가 탄생한 것이다.

왓슨의 카트 디자인은 매장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지만, 쇼핑카트를 처음 만들어낸 골드먼에게는 두려운 경쟁자였다. 골드먼은 왓슨의 디자인을 가져다가 똑같은 기능을 붙인 후 3달러 낮은 가격에 파는 것으로 대응했지만, 특허분쟁 끝에 결국 뒷면이 접히는 카트를 팔 때마다 왓슨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다. 여기에 마지막 교훈이 있다. 경쟁은 개선을 부르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진화된 쇼핑카트의 등장은 소비자들이 매장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담는 ‘셀프서비스형’ 슈퍼마켓의 성장을 만들어냈다.

이런 시도들이 쌓여서 쇼핑카트는 점점 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을 전후해서 미국에 베이비붐이 일자 어린아이를 매장에 데리고 오는 주부들이 늘어났고, 이들이 쩔쩔매는 걸 본 매장에서는 쇼핑카트 뒷면을 펴면 아이들을 앉힐 수 있는 작은 의자가 생기는 디자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뒤로도 매장에 따라서 약간의 변화를 주기도 했지만 현재 사용되는 쇼핑카트의 디자인은 1950년대에 완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 디자인이 디지털 쇼핑 시대까지 이어져 우리가 온라인 매장에서 사용하는 ‘장바구니에 담기’ 아이콘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