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대 졸업 후 ‘페이닥터’로 10여년을 일한 김예진씨는 두 가지 꿈을 이뤘다. 경기도 광명시에 자신의 치과를 개원하면서 작지만 알찬 콘서트홀까지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13일은 바로 그 ‘티스 아트홀’의 개관연주회. 김씨가 큰마음 먹고 마련한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 2021 프라하의 봄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이동하가 앉아 바흐의 ‘파르티타 제1번, BWV 825’에서 시작해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으로 끝나는 풍성한 선율을 선사했다.
클래식 무대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만이 아니다. ‘티스 아트홀’처럼 작지만 의미 있는 공연장도 여럿 있다. ‘라움아트센터’는 10여 년 전부터 강남 한복판에서 클래식 살롱문화를 일궈오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선 ‘티엘아이아트센터’가 지역과 밀착한 정통 클래식 연주장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마티네 콘서트와 디너 콘서트 명당
서울 강남 한복판을 지나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라움아트센터는 설계 의도대로 길가에서 보면 성벽을 연상시키는 외관을 갖고 있다. 내부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들여왔다는 석재로 한껏 치장하고 샹들리에 등으로 꾸며진 내관은 중세 유럽의 성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으로 이어지는 연건평 1만평에 달하는 내부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아직 많은 이에겐 생소한 이곳은 국내 최초의 ‘소셜베뉴’를 표방하는 공간.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악가 조수미가 사랑하고 피아니스트 손열음 등이 무대에 선 콘서트홀을 품고 있다. 최근 11년 동안 220회 이상 예술 공연이 열려 3만5000여명이 감상했을 정도. 지난 연말에는 피아졸라 100주년 퀸텟 내한공연이 열려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가장 아름다운 무대는 4층 체임버홀이다. 길쭉한 회랑은 유럽 오래된 성당을 연상시킨다. 무대 쪽은 자연 채광으로 하늘에서 빛이 쏟아진다. 앤티크 같은 나무 의자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느낌은 국내 다른 공연장에선 가질 수 없는 경험이다. 또 왕실 연회장을 연상시키는 3층 갤러리 홀이나 가장 큰 2층 마제스틱 볼룸 역시 분위기에선 빠질 수 없는 라움아트센터의 자랑이다. 이 같은 실내 공간과 성벽에 둘러싸인 정원을 연상시키는 가든을 활용해 라움아트센터는 ‘즐기는 클래식’ 문화를 만들고 있다. 해설이 있는 음악과 브런치로 구성된 마티네 콘서트, 그리고 공연 후 아티스트와 관객이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는 디너 콘서트로 단골 관객층을 형성하며 우리 사회 소셜 베뉴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라움아트센터의 올해 마티네 콘서트는 주제별로 총 11회 열릴 예정이다. 첫 순서는 추억의 영화 속 클래식 명곡들과 그 숨은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네마 클래식’이 실내악(2월 22일)과 솔로(4월 26일)로 나눠 관객과 만난다. 김종윤(피아노), 이희명(바이올린), 홍윤호(비올라), 박건우(첼로)로 구성된 앙상블 프로젝트와 바이올리니스트 박규민이 영화 속 실내악곡을, 피아니스트 송영민과 소프라노 김예은이 영화에 삽입된 피아노 솔로곡과 오페라를 들려줄 예정이다. 3월 ‘시네마 재즈’(3월 29일)에서는 독창적인 편곡으로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뛰어넘는 그룹 올 댓 클래즈가 조지 거슈윈, 클로드 볼링 등 영화 속 재즈 음악을 연주한다.
◆‘작은 공간, 큰 울림’
경기도 성남시 야탑역 인근에 자리 잡은 티엘아이아트센터는 ‘지역 주민에게 양질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한다’는 쉬우나 이루기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실천 중인 공연장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어려운 환경인데도 지난해 총 80여회 공연을 진행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사회공헌) 모범사례’로 선정되어 2021년 예술경영대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을 정도다. 재벌이나 함 직한 문화사업인데 LCD화면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핵심 반도체를 설계하는 IT기업 티엘아이가 사회공헌을 위해 성남 사옥 2층에 250석 규모로 2013년 건립했다.
‘작은 공간, 큰 울림’이라는 자랑처럼 콘서트홀 핵심인 잔향시간은 1.2초로 설계됐다. 반사·흡음 기능의 전동 커튼과 무대의 후벽 옵션 선택에 따라 팝, 재즈, 연극, 뮤지컬 등의 공연도 수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피아노가 비치된 연습실이 12개나 된다. 건물로부터 진동이 전달되지 않는 특수 방진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티엘아이아트센터의 가치는 이런 콘서트홀을 활발하게 가동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티엘아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특히 미래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 나갈 젊고 실력 있는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성장을 돕는 기획이 다양하다.
올해는 6월 김규연 피아노 독주회를 시작으로 한국을 빛낸 최정상 음악가의 무대 ‘티엘아이 아티스트 시리즈’, 그리고 5월에 열리는 한재민 첼로 리사이틀 등 신선함과 원숙함이 공존하는 ‘영 비르투오조 시리즈’, ‘보컬 시리즈’와 ‘티엘아이 실내악 축제’ 등이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