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통화량 한 달 만에 24조원 증가… 금리인상 추가 압박

시중 통화량 3613조 역대 최대

금리 오르자 주식 팔아 예·적금
정기 예·적금 20조원 넘게 불어
13년1개월 만에 최고 증가율 기록

유동성 커져 물가 상방 압력 작용
기준금리 최대 2%까지 오를 수도
“물가상승률 2%→2.8% 상향” 전망
서울시내 한 은행 외벽에 대출 금리 안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시중통화량이 3600조원을 넘어섰다. 한 달 만에 24조원 가까이 늘어나며 또다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늘어난 유동성이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에서는 올해 기준금리가 2.00%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은이 17일 발표한 ‘통화 및 유동성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시중통화량은 광의통화량(M2) 기준 3613조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11월보다 23조8000억원(0.7%) 증가했다. 시중통화량은 2020년 4월 3000조원을 넘어선 뒤 매달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3.2% 늘어나며 2008년 11월(14.0%) 이후 13년 1개월 만에 최고 증가율을 나타냈다.

 

M2에는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이상 M1) 외에도 MMF(머니마켓펀드),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CD(양도성예금증서), RP(환매조건부채권), 2년 미만 금융채, 2년 미만 금전신탁 등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이 포함된다.

 

경제주체별로는 가계가 보유한 M2가 한 달 동안 14조4000억원 늘어났다. 가계대출이 감소세로 전환했지만, 가계가 주식 등 대체자산을 매도하고 재난지원금 지급 효과가 지속된 영향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기업은 연말 정부의 재정자금 집행과 양호한 수출 증가에 따른 기업 결제자금이 유입되며 14조6000억원 늘어났다. 기타금융기관은 9000억원 증가했다.

 

상품별로는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이 20조5000억원 불어났다. 수신금리가 오르고 예대율 관리를 위한 자금유치가 이뤄진 결과로 풀이된다. 금전신탁도 5조3000억원 증가했다. 반면 수시입출식 예금(-5조7000억원)과 MMF(-4조1000억원)는 감소했다. 이에 따라 수시입출식 예금이 포함된 M1은 전월 대비 0.6% 줄었다. 2018년 12월(-0.4%) 이후 3년 만의 감소 전환이다.

M2 증가세 원인은 중앙은행이 새로운 유동성을 공급했다기보다는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향해 통화량에 잡히지 않던 유동성이 정기예·적금 등으로 들어오면서 수치가 늘어난 측면도 있다. M1은 정기예·적금을 포함하지 않아 수치가 줄어든 셈이다. 정진우 한은 경제통계국 금융통계팀 차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증한 가계대출이 위험자산 쪽으로 흘러갔는데, 투자 자금을 수시입출식 예금에 준비해두면서 M1 증가율이 높게 잡혔었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회수를 시작하고, 우리나라는 대출규제까지 강해지면서 가계가 돈을 정기 예·적금에 넣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늘어난 시중 유동성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4개월 연속 3%대를 나타내며 한은 목표치인 2.0%를 크게 웃돌고 있다.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를 관리하는 한은 입장에서는 물가 상방 압력인 통화량 지표를 기준금리 결정에 참고할 수밖에 없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코로나19 직전 수준인 1.25%다. 다음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회의는 오는 24일이다. 지난달 한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한 만큼 효과와 추이를 살피기 위해서라도 한 달 만에 기준금리를 다시 올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달 초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과 골드만삭스는 한은이 올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추가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시장에선 최근 유동성과 물가 상승 추이에 따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내 세 차례 추가 인상할 수 있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세 차례 올리면 2%가 된다. 하나금융투자 이미선 연구원은 한은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0%에서 2.8%로 올려 잡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올해 말 한은 기준금리 전망치를 1.75%에서 2.00%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韓 국가부채 증가폭 18.8%P… OECD 1위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행 중인 대규모 확장재정 정책 등의 영향으로 2020년부터 2026년까지 한국이 다른 비기축통화국과는 달리 높은 수준의 재정적자가 지속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가부채가 가장 빨리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재정준칙 법제화와 세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7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국제통화기금(IMF) 국가재정 모니터를 바탕으로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부터 2026년까지 비기축통화국 재정 전망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 증가폭은 18.8%포인트로 OECD 비기축통화국 17개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기축통화국은 국제거래의 기본이 되는 기축통화인 달러·유로·엔·파운드·위안화를 법정 통화로 사용하지 않는 국가다. 한국의 국가부채비율 증가폭은 기축통화국을 포함한 OECD 37개국 전체로 확대·비교해도 1위였다.

2020∼2026년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이 급등하는 반면 캐나다, 아이슬란드, 헝가리 등 다른 비기축통화국은 평균 1.0%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은 2020년 47.9%에서 2026년 66.7%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부채비율 순위도 비기축통화국 17개국 중 2020년 9위에서 2026년 3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2026년 기준 1위는 캐나다, 2위는 이스라엘이다.

 

이는 다른 비기축통화국과 달리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가한 재정지출 수준이 2026년까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터키를 제외한 다른 비기축통화국들은 같은 기간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해 정부 지출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2020∼2021년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 2022∼2026년 통합재정수지는 한국이 88.0인 데 비해 다른 비기축통화국들은 평균 33.6으로 추정됐다. 이는 한국의 재정적자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경연은 최근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를 뿐 아니라 급속한 고령화와 높은 공기업 부채 등 리스크 요인도 산적해 있어 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경연은 국제비교에 사용되는 일반 정부부채(D2)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국가 지급보증으로 사실상 정부 부채로 봐야 할 한국의 비금융공기업 부채 또한 OECD 2위 수준이며, 향후 예상되는 막대한 규모의 통일비용 또한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최근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저출산·고령화 등 장기적 국가부채 리스크도 상당한 만큼 재정준칙 법제화와 적극적인 세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