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 A(28)씨의 최대 고민은 ‘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줄어든 매출에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늘어나면서 수면시간도 불규칙해졌다. 불면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A씨는 최근 잘 때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스마트워치에서 분석해 주는 기록을 통해 언제 잠이 드는지, 얼마나 잠을 잤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면을 유도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다. A씨는 “수면 분석 기록을 보면서 스스로 수면 시간이나 패턴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며 “잡다한 생각을 줄이기 위해 수면유도 앱을 활용하면서 불규칙한 수면 습관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67만명. 우리나라에서 수면 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람 수다. 2016년 50만명 미만이었던 국내 수면 장애 환자는 연평균 7.9%씩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슬립테크는 수면을 분석하는 기술과 수면 환경과 질을 개선하거나 수면 관련 질환 치료를 돕는 기술로 나눠진다.
◆“현재 내 수면 상태는?”… 수면 상태 파악하는 디바이스
국내 스타트업 ‘에이슬립’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기로 수면의 질을 분석해 수면장애 개선을 돕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병원에서 실시하는 수면 모니터링을 가정에서 간단한 디바이스를 통해 해결해 보고자 하는 고민에서 에이슬립이 탄생했다. 에이슬립에 따르면 수면 장애의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해서는 병원에서 실시하는 수면다원검사가 필요하지만, 국내 수면실은 약 200여곳으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기존의 수면 측정기기는 직접 착용을 해야 해 불편할 뿐 아니라 유의미한 데이터가 적다.
에이슬립은 와이파이 신호를 기반으로 수면 중 움직임과 호흡사운드를 통해 수면 상태를 인지하는 ‘비접촉 수면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에이슬립의 독자 AI 수면 분석 솔루션은 기존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와 비교해 분석 정확도가 1.6배 이상 높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에이슬립은 단순히 측정에만 그치지 않고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맞춤형 개선책도 제공하고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다양한 기업과 협력을 통해 매트리스, 가전 그리고 AI 스피커 등의 침실 제품들이 사용자의 수면을 관리할 수 있도록 통합 솔루션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에이슬립은 현재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아마존, 코웨이, 삼성생명 등과 협업하며 빠르게 성장 중이다. 또 분당서울대학교병원수면센터와 카이스트 유저 행동변화 연구팀과 함께 디지털 치료제 시장 진출을 목표로 공동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코골이 조절 베개, 맞춤형 스마트 침대 등장
가구·가전 업체들은 수면장애를 개선해주는 슬립테크 제품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 슬립테크 침대 업체인 미국 슬립넘버는 맞춤형 스마트 침대를 CES 2022에서 선보였다. 슬립넘버의 스마트 침대는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해 심박수, 호흡수, 수면 상태 등을 자동으로 측정한다. 동시에 침대 매트리스 내부에 탑재된 수십개의 센서를 통해 사용자 체형에 맞춰 침대의 높낮이와 각도, 온도 등을 조절해 사용자가 깨지 않고 최적의 수면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웨이도 CES 2022에서 ‘스마트케어 에어매트리스’를 최초로 공개했다. 국내 정식 출시를 앞둔 스마트케어 에어매트리스는 매트리스 내 에어셀이 사용자 체형과 수면 자세 등에 따라 4개 존의 공기압 변화를 감지해 경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국내 헬스케어가전 기업인 텐마인즈는 코골이 완화 베개 ‘모션필로우’를 개발해 CES에서 두 차례 혁신상을 받았다. 모션필로우는 AI 학습을 통해 코골이를 완화해 주는 베개다. 사용자가 수면 중에 코를 골게 되면 모션 센서가 이 소리를 감지한다. 이후 베개 속 에어백을 이용해 사용자의 고개를 자연스럽게 움직여 기도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코골이를 줄여준다.
필립스와 보스 등 해외 가전 업체들도 수면을 돕는 제품을 출시했다. 필립스의 ‘스마트 슬립’ 시리즈의 헤드밴드는 사용자의 뇌파를 분석하고 적합한 ‘백색소음’을 들려준다. 백색소음을 통해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숙면에 들 수 있도록 돕는다. 보스의 ‘슬립버드’는 무선 이어폰 형태로 자는 동안 들을 수 있는 수면유도 음원 10여종을 제공한다. 네덜란드 스타트업 섬녹스가 개발한 수면용 로봇베개는 끌어안고 있으면 기기가 사람 호흡 속도에 맞춰 수축했다가 부풀려지는 과정을 반복해 안정적인 호흡 리듬을 만들어 숙면을 돕는다.
◆빅테크 기업, 너도나도 헬스케어 시장으로
아마존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전세계 빅테크 기업들이 헬스케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의 발전과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슬립테크를 비롯해 헬스케어 시장이 새로운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연평균 17%가량 성장하고 있다. 2020년 1419억달러(약 170조원)에서 2027년에는 4269억달러(약 511조원)로 7년 새 3배 넘게 성장할 전망이다.
헬스케어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기업은 애플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애플이 전세계를 위해 가장 공헌할 분야는 의료 분야”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애플은 헬스케어 산업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애플의 목표는 아이폰과 애플워치 등 디바이스를 통해 이용자들의 건강 데이터를 관리하고 이를 의료·연구진과 공유하는 플랫폼 사업을 구축하는 것이다.
애플 이용자는 다양한 건강 관련 앱을 통해 측정된 자신의 생체 정보를 애플이 제공하는 ‘헬스키트’에서 한번에 관리할 수 있다. 고성능 심전도 센서를 탑재한 애플워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의료기기로 인증받기도 했다. 지난해 초에는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 수치를 얻는 ‘무채혈 혈당 측정’ 기술을 미국 특허청에 등록하면서 향후 애플워치에 적용될지 관심을 얻고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애플은 ‘애플 헬스 레코드’를 통해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애플 헬스 레코드는 각 개별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에 저장된 진료·처방·진단검사결과 기록을 애플 기기와 연동하는 플랫폼이다. 환자와 의사, 의료기관이 애플 헬스 레코드를 기반으로 병원진료 기록까지 공유한다.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2018년 온라인 약국 스타트업 ‘필팩’을 10억달러(1조2000억원)에 인수하면서 의료시장에 진출했다. 필팩의 환자 의료 데이터를 확보한 아마존은 2020년 말 처방약 온라인 판매 서비스인 ‘아마존 파머시’ 서비스를 개시했다. 소비자는 약국에 방문할 필요 없이 웹사이트나 앱을 통해 간편하게 약을 주문하고 배달까지 받을 수 있다. 웹사이트나 앱에서 주문을 받으면 처방약을 배송해 준다. 의약품 검색, 주문 내역, 처방전 내역 등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고 24시간 주 7일 약사 상담도 제공한다.
아마존은 헬스케어 스타트업 ‘젤스’, 대형병원과 파트너십을 맺고 의료용품 배송 서비스 사업에도 나섰다. 환자가 퇴원하기 전 의사가 앱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용품을 선택하면 목록이 환자에게 자동 전달되고 환자는 아마존 홈페이지에서 이를 구매할 수 있는 의료 솔루션 서비스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클라우드 플랫폼인 ‘애저’와 AI 기술을 바탕으로 차세대 의료 서비스 솔루션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애저는 의료현장에서 환자 예약 및 비대면 진료를 수행하고 환자의 의료기기를 모니터링하거나 임상시험 기록을 자동으로 저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