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찰에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례들이다. A씨와 B씨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알려진 ‘스토킹’의 통념과는 다르지만, 경찰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에 해당한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A씨의 경우 피해자가 경찰 조사에서 “인터폰으로 연락을 받은 정확한 일시와 횟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 ‘공소권 없음’ 처리됐으나 B씨에게는 아버지, 형에 대한 접근금지 등 스토킹처벌법 긴급응급조치가 적용됐다.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뒤 이웃이나 지인, 가족 등의 갈등에 적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사안들은 넓은 의미에서 스토킹에 포함되지만, 스토킹처벌법의 제정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법 규정이 모호해 오용되는 경우도 많아 규정을 다듬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 시행 후 스토킹 신고 8배 급증
◆층간소음·금전 갈등도 모두 ‘스토킹’
스토킹처벌법 제정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일각에서는 법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한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스토킹 행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이나 그의 동거인, 가족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규정돼 있다. 스토킹 범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장 핵심 기준이 ‘지속적·반복적’, 피해자의 ‘불안감·공포심’인 것이다. 이 때문에 채권·채무나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지인 간의 갈등에도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되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한 빌라에 사는 C씨는 몇 달 전부터 아래층에 사는 주민과 흡연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아래층 사람이 화장실과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워 창문과 환풍기 등으로 담배 연기가 계속 올라오기 때문이다. C씨는 “집 앞에 쪽지를 붙여봤는데 소용없어서 문을 두드렸더니 ‘찾아오지 말라’고 오히려 화를 냈다”면서 “참다 참다 몇 달 만에 또 갔더니 ‘스토킹 혐의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C씨는 “경찰에 물어봤더니 계속 찾아가면 진짜 스토킹 혐의로 입건될 수도 있다고 해 황당했다. 쪽지를 붙이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며 “고통받는 건 난데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피해자가 참아야 한다니 억울하다. 스토킹처벌법을 악용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경찰도 법 규정이 모호해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인정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D씨는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불안감을 줬는지가 중요한데 이 부분은 주관적인 부분이라 우리가 보기에도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법을 해석해서 스토킹 신고를 남발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법 적용 범위가 넓어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법 취지는 연인 간 괴롭힘 같은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인데, 법 조항에 ‘상대방 의사에 반해서 물건을 갖다 놓는 것’ 등도 다 포함하다 보니 본래 취지와 달리 층간소음, 채권 추심 등도 포함되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실제 스토킹 사건에 대해서는 즉각 격리가 이뤄지지 않는 등 부족한 점도 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안 돼 정리정돈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스토킹에 해당하는 범위를 본래 취지에 맞게 구체화해야 한다”며 “법 제정 의도와 목적을 생각해 적용 범위를 명확하게 하고, ‘진짜’ 스토킹 범죄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