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단일화 제안 철회한 안철수 “윤석열측, 의지·진정성 없어”

일주일만에 결렬 선언 배경과 향후 전망

최근 지지율 하락·유세버스 사고 겹악재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 방안도 무산 판단
좁아진 입지 탈출, ‘반전 카드’로 내민 듯

李 추격 거세질 경우 재부상도 배제 못해
尹에 지지율 쏠리면 수면 밑 가라앉을 듯
安이 10%대 지지율 회복 땐 다시 주도권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0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0일 단일화 결렬의 책임이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있다고 강조하고 단일화 무산을 선언했다. 지난 13일 윤 후보 측에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 제안을 선제적으로 던졌지만 일주일 만에 이를 철회한 것이다. 안 후보는 최근 잇단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한 자릿수대로 내려앉은 데다 ‘유세버스 사고’까지 발생하는 등 겹악재로 고전 중인 상황이다. 갈수록 좁아지는 입지를 벗어나려는 반전 카드로 단일화 제안 철회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정치권에선 향후 선거 판세에 따라 언제든 다시 야권 단일화 논의가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안 후보의 단일화 제안 전격 철회는 우선 자신이 제안한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로 풀이된다. 안 후보는 이날 회견 3시간30분 전쯤 이뤄진 윤 후보와 통화 직후 단일화 제안을 철회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는 이 통화에서 ‘후보들이 만나 담판을 하자’는 취지로 말해 사실상 여론조사 단일화에 선을 그었다고 한다. 안 후보는 이날 회견에서 “지난 일주일간 제1야당은 단일화 의지도, 진정성도 없다는 점을 충분하고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의 ‘고사 작전’에 대한 불쾌감도 여과 없이 내비쳤다. 안 후보는 회견에서 “(윤 후보의 답이 없는 동안) 가짜뉴스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일부 언론은 더욱 적극적으로 편승했다. 저희 당이 겪은 불행을 틈타 상중에 ‘후보사퇴설’과 ‘경기지사 대가설’을 퍼뜨리는 등 ‘정치 모리배’ 짓을 서슴지 않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경우가 없어도 너무나 경우가 없는 짓”이라고도 일갈했다. 유세버스 사고를 수습하고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재개한 선거운동의 동력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전략이란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당분간 대선 레이스는 윤, 안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4자 구도로 전개될 전망이다. 그러나 향후 윤 후보의 지지율 추이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단일화 무산으로 윤 후보 지지율이 정체되거나 이 후보의 추격이 거세진다면 단일화 논의는 언제든지 다시 부상할 수 있다. 이날 국민의힘 이양수 선거대책본부 수석대변인이 “정권교체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한 것도 향후 판세 변화에 대비한 포석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에 중도·보수 지지층의 윤 후보로의 지지율 쏠림 현상이 가속화한다면 단일화 논의는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 안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 제안과 철회를 선제적으로 했지만, 현실적인 선거 구도와 힘의 역학 관계를 고려하면 단일화의 키는 결국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쥐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안 후보가 지지율을 10%대로 회복할 경우,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박빙의 선거 구도에서 윤 후보를 상대로 주도권을 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5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들에서 윤 후보가 이 후보를 오차범위 안팎에서 앞선다는 결과가 잇따르면서 일단 초반 성적은 윤 후보가 우위에 섰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우리 후보의 상승세가 뚜렷하고, 다자구도에서도 오차범위 밖 격차로 1위를 하고 있지 않나”라며 “단일화 결렬로 그닥 큰 영향을 받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 분석은 정반대다. 민주당 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한 주는 탐색전이었다. 지난주 초반 안 후보의 단일화 제안 등으로 일시적으로 약세였던 흐름이 주 후반으로 오면서 다시 초경합으로 변했다”며 향후 ‘총력전’을 예고했다.

 

◆이준석 “安, 조변석개”… 송영길은 ‘손짓’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0일 야권 후보 단일화 결렬을 선언하자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통합정부를 꾸릴 준비가 됐다”며 안 후보에게 손짓했다. 국민의힘은 안 후보를 향해 “정권교체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입장문을 냈지만, 이준석 대표는 안 후보의 단일화 번복에 “조변석개하는 입장변화”라고 비판했다.

 

송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희는 안 후보가 제시한 과학기술 강국 어젠다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수용할 자세가 돼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안 후보가 저런 발표를 하게 된 것은 이준석 대표나 윤석열 후보나, 국민의힘 측에서 안 후보를 모욕하고 모멸한 그런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안 후보 (캠프에서) 두 분이 돌아가신 것, 사모님께서 코로나 걸리신 것에 대해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고도 했다.

 

국민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홍경희 대변인은 송 대표를 겨냥해 “며칠 전 안 후보 단일화 제안을 비하했던 자신과,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오늘의 자신이 동일인인지 답을 해보라”며 “얄팍한 계산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일단 야권의 불확실성 변수가 제거된 셈이다. 야권 단일화가 유세 초반 이슈를 잠식했는데 사라졌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당에선 단일화 관련 언급을 꺼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민주당은 단일화 결렬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이날 입장문 발표 뒤 기자들에게 “단일화 문제는 양측에서 감정이 상하면 안 되기 때문에 너무 많은 걸 말씀드릴 수 없다”면서도 “안 후보가 저렇게 얘기하셨지만 그걸로 결렬이다, 끝이라고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홍 대변인은 이 대변인을 향해선 “안 후보의 충정을 이해한다면 그간 단일화 제안을 두고서 국민의힘 내부자들이 쏟아낸 조롱과 비하의 책임을 우선 강하게 묻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이 대표는 안 후보의 기자회견 직후 페이스북에 “단일화 제안을 하다가 갑자기 또 완주 선언을 하셨으면, 그 조변석개하는 입장변화에 대한 비판은 안 후보님과 국민의당이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지 (유세버스 사고로 사망한) 고인이나 이준석에게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통화에서 “안 후보가 어떻게 하면 그림 좋게 (국민의힘에) 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중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국민의힘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지지율 추이를 봐서 빠른 시일 내에 안 후보를 향한 스탠스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0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결렬을 선언한 뒤 서울 마포구 홍대 상상마당 앞에서 열린 유세 전 선거운동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유세 재개한 安… “홈런 4번타자 되겠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는 20일 단일화 결렬 선언 직후 서울 홍대 거리를 찾아 청년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안 후보는 “‘9회 말 투아웃’인 위기의 대한민국에서 제가 홈런을 치는 4번 타자가 돼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며 본격적인 선거운동 재개에 나섰다.

 

안 후보는 이날 국민의당을 상징하는 주황색 목도리에 흰색 점퍼 차림으로 홍대 거리에 나왔다. 코로나19에 확진돼 입원했다가 회복한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도 함께했다. 안 후보는 유세에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떨어뜨리는 게 대통령 선거가 아니다. 유능하고 깨끗한 정부를 만들 후보를 뽑는 게 대선”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안철수는 죽고 대통령만 남을 것”이라며 “제 남편은 융통성 없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 본인의 몸을 거름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가 “4번 타자가 되겠다”고 하자 한 청년이 과자 ‘홈런볼’ 봉투를 건네며 “만루 홈런 치고 대통령 당선되시라”고 하기도 했다.

 

전날 안 후보는 김 교수와 서울 중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1시간가량 코로나19 검체를 채취하며 선거운동을 재개했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이었던 지난 15일 충남 천안에서 유세버스 사망 사고로 국민의당 선거운동을 전면 중단한 지 나흘 만이었다. 안 후보는 중구보건소에서 기자들에게 “최근 오미크론 확산 때문에 많은 분이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고 계신다”며 “특히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의료진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계셔서 조그만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어 둘이서 찾아뵙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