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 녹취록에 ‘그분’으로 지목된 조재연 대법관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각종 의혹을 부인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는 지난해 2월4일 정영학 회계사에게 “저분은 재판에서 처장을 했었고, 처장이 재판부에 넣는 게 없거든, 그분이 다 해서 내가 원래 50억을 만들어서 빌라를 사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녹취록은 지난해 10월 정치권 등에 알려졌고, 김씨가 조 대법관의 딸에게 판교 타운하우스(빌라)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 대법관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김씨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 “딸들은 함께 살다가 지금은 서울과 경기도 죽전에 거주하고 있으며 등본 등 자료요청이 들어오면 즉시 공개하겠다”고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21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조 대법관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 이어 여당까지 나서 입장표명을 촉구한 데 따른 것이다. 조 대법관은 “(실명을 거론해) 타인의 명예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행위는 엄정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서 법적 조치까지 예고했다.
조 대법관의 해명으로 ‘김만배 녹취록’을 둘러싼 의혹이 해소될 리 없다. 오히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사생결단식’ 정치공방만 가열될 게 뻔하다. 민주당은 녹취록 속 “윤석열은 영장 들어오면 죽어”라는 표현을 앞세워 ‘윤석열게이트’라고 주장했다. ‘이재명게이트’로 언급된 부분에 대해 여당은 “(이 후보가) 입구에서 지킨다는 의미의 게이트인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사법농단 수사로) 양승태 사법부 판사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어 ‘영장이 법원으로 청구되면 판사들에 의해 죽는다’는 의미”라며 “녹취록 일부를 왜곡한 악마의 편집”이라고 비난했다.
검찰이 논란을 자초했다. 의혹이 나온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선거를 앞두고 의혹을 키운 꼴이 됐다.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검 등 ‘50억 클럽’ 의혹 수사는 사실상 대선 이후로 넘어갔다. 김명수 사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리 만무하다.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대법원 압수수색 영장을 두 차례나 기각했다. 현직 대법관 이름이 생중계되는 초유의 사태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곤두박질치는 사법부 신뢰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이제라도 여야는 김씨의 과시욕에 휘둘려 정쟁만 일삼기보다는 녹취록을 공개해 진위를 가려야 할 것이다. 특검으로 진상을 규명하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