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열고 공원 산책하고… 일상 지키는 키예프 시민들

침공 위기 최고조… 외신이 전하는 우크라 현장

NYT “反러 깃발 더 보이는 정도”
“푸틴 연설, 예상했던 일” 덤덤
일촉즉발 상황에도 차분한 분위기
사재기·현금인출기 줄서기도 없어
일부는 무기 구입, 전쟁대비하기도
“돈바스 분리독립 승인 규탄”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러시아 대사관 앞에 모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자국 국기와 유럽연합(EU) 깃발을 들고 러시아의 돈바스 지역 분리독립 승인을 규탄하고 있다. 키예프=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수도 키예프 시민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며 침착하게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날 연설에 대해서도 “예상했던 일”이라는 덤덤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키예프 거리는 여느 평범한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페와 음식점들은 개점 시간에 맞춰 늘 그렇듯 문을 열었고, 공원에서는 봄 햇살을 맞기 위해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에 띄는 점은 평소보다 반러시아를 외치는 깃발이 좀 더 많이 보이는 정도라고 NYT는 전했다.

 

키예프는 인구 300만명이 살고 있으며, 매일 키예프로 통근하는 시민은 100만명에 달한다.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지만 사재기 현상이나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줄을 서는 풍경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이날 오후 키예프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는 소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시위대는 우크라이나의 인기 록 밴드인 오케안 엘지(Okean Elzy)의 노래 중 “모든 것이 다 잘될 거야”라는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데 그쳤다.

 

시위대 중 한 명인 세르히 이콘니코프(23)는 “나라를 지킬 것”이라며 “푸틴이 침공하면 러시아인들은 피를 흘리게 돼 있다”고 전의를 다졌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일원으로 새로 시작할 것”이라고도 했다.

 

전날 푸틴의 연설에 대해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어리석은 연설’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이바나 페트렌코(22)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어제의 뉴스는 내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며 “전 세계가 해법을 내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흐멜니츠키 출신인 카테리나 체레파노바(38)는 “푸틴은 미친 짓을 했지만 우리는 충격받지 않았다”며 “러시아 사람들이 오히려 푸틴의 말도 안 되고 비현실적인 말을 듣고 충격받기를 바랄 뿐”이라고 비꼬았다.

 

키예프 도심을 가로지르는 드네프르(드니프로)강 주변도 평화로운 분위기다. 이곳에서 연인들의 사진을 찍어 주고 있던 데니스 아스타펜코는 “오늘 오전 결혼식을 올린 커플의 사진을 찍는 중”이라며 “이번 주 후반 촬영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했다.

 

조용히 전쟁에 대비하는 모습도 엿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면서 반려동물을 동물보호소에 맡기거나 무기 판매가 늘어나는 것이 그 예다. 키예프 시내에 있는 일부 무기 매장에는 이미 재고가 바닥을 보이기도 했다.

 

키예프 중심가에서 무기상을 운영하는 아르투르 사부아키는 “주로 자기 자신을 지키거나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사들이는 것 같다”며 “몇 달 전 재고를 확충해 놨기 때문에 아직까진 재고가 조금 남아 있다”고 밝혔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일코 쿠체리프 민주적 이니셔티브 재단’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48%가 전쟁이 나면 군대에 입대하거나 비군사적인 지원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직접 싸울 것이라는 시민은 23%, 비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는 시민은 25%였다. 반면 국외로 도피하겠다고 밝힌 사람은 3%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