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느냐 떠나느냐… 패닉 빠진 우크라이나 키예프 주민들

키예프, 두려움·공포·분노로 가득 차
폴란드 등 난민 유입에 대비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한 학교 지하실에 주민들이 대피해 있다. 키예프=EPA연합뉴스

“지금 키예프는 거대한 공포심으로 가득 차 있어요. 모두가 이 도시를 벗어나려 하고 있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한 지하철역에 요가 매트를 깐 채 망연자실해 있는 올레스키 유헤멘코(24)는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5ℓ짜리 물병을 챙겨 역으로 대피한 그는 “5~6시간 이내에 키예프의 아파트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키예프가 25일(현지시각) 밤 중으로 러시아에 점령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주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우크라이나가 전격 침공당하기 전날인 23일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키예프의 표정은 24일 새벽 완전히 바뀌었다. 키예프 주민이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둘로 나뉜 것도 이때부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키예프 주요 도로가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차들로 마비됐다고 전했다. 도심은 텅 비었고, 여행용 가방을 든 사람들은 지하철역으로 몰려들었다. 약국, 주유소, 마트는 북새통을 이뤘다. 현금인출기(ATM) 앞에도 현금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끝없는 줄이 생겨났다.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시민인 보리스 미샤린(30)은 그는 “친구들과 계속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며 “통신 신호가 끊길 것을 대비해 인터넷이 안 터져도 작동하는 앱을 다운로드 했다”고 설명했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 시민들이 방공호로 쓰이는 키예프 지하철역에서 잠자고 있다. 키예프=AP뉴시스

키예프에는 두려움과 공포심뿐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분노도 가득 차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키예프 중심가인 마이단 네잘레즈노스티 광장에서 가디언 취재진과 만난 빅토르 알렉시비치는 “러시아는 100%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손자를 데리고 키예프를 일단 떠난 뒤 다시 돌아와 군대에 합류할 것”이라며 “무기는 없지만, 나라를 지킬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육군 장교인 올레그 올레고비치(30)는 “시민들이 떠나고 있지만, 우리는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러시아)을 박살 낼 것”이라며 전의를 다졌다.

 

이날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은 SNS를 통해 가급적 집에 머물고, 필요하면 대피소로 대피하라고 밝혔다. 키예프 전역에는 지하철역, 방공호 등을 포함해 약 5000곳의 대피소가 마련됐다. 클리치코 시장은 “최악의 적은 공황상태”라며 시민들에게 침착할 것을 당부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는 난민 유입에 대비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인도적 지원을 한 목소리로 약속했다.

 

이날 오전 폴란드의 접경 도시 메디카에는 수십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짐을 끌고 걸어서 도착했다. 루마니아로 넘어간 우크라이나 국민도 수 백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의 접경 도시인 헝가리 베레그수라니 국경에도 난민들이 몰렸다. 헝가리 국경에 도착한 타마스 보드라느는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할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게 맞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