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전쟁/전주성/웅진지식하우스/1만8000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치르는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는 ‘재정 건정성’이다.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세계에 ‘큰 정부’와 ‘적자 재정’ 필요성이 높아졌다. 특히 국내에서는 대선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전국민 재난지원금’, ‘소상공 방역지원금’, ‘기본소득제’ 등의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은 결국 세금을 내는 이들이 떠안게 될 괴로운 문제이지만, 양극화와 고령화 사회에서 피하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위원을 지낸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 교수는 신간 ‘재정전쟁’에서 “세금과 복지의 절반은 정치”라고 말한다. ‘큰 정부와 복지 확대’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 재정건정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고, 불평등과 기후 위기와 같은 범지구적 문제에 정부가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어떻게 더 걷어서 누구를 위해 더 쓸 것인가’라는 첨예한 갈등을 관리하며 유능하게 역할을 해내는 정부만이 국가 비전과 경쟁력을 확보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불거진 ‘기축통화국’ 논란처럼, 팬데믹 이전의 경제 전쟁은 환율을 둘러싼 ‘통화전쟁’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은 재정의 힘이 좌우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지난 40여 년과 달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강조되면서 국가 간 경쟁의 지평이 달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시장의 기능은 중요하지만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정부 개입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저자는 “튼튼한 재정을 가진 나라만이 버틸 수 있다”면서 진영 논리를 넘어선 정부의 과세 능력이 관건임을 강조한다.
정부의 잘못된 과세는 자칫 조세저항감을 불러올 수 있다. 부자들의 몫을 가져와 빈곤층에 배분하겠다는 ‘로빈 후드식 과세’도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실패하기 쉽다. 문재인정부 내내 갈등 요인이었던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세금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 실책을 범했다고 본다. 하나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이며, 다른 하나는 세금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이 둘이 결합되면서 목표는 산만해지고 수단은 애매해졌다는 평가다. 그 결과 수요 감소를 기대한 정책에선 가격 거품이 발생했고, 늘어나는 세금을 피하려는 수요자들이 전세 시장에 몰려 시장이 과열됐다. 이는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실패한 것은 물론, ‘정부가 세금만 올린다’는 조세저항감까지 형성했다. 애초에 “집값 안정이 목표라면 여기에 초점을 맞춘 수단을 찾아야 했고, 과세 형평이 목표라면 다른 세금을 포함하는 포괄적 세제의 틀에서 적정 선택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특히나 부동산은 소득처럼 지하경제에 숨기 어렵고 해외로 이전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세금을 남에게 전가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고, 이것이 부족하면 조세저항이라는 수단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주택 시장과 전세 시장이 연결되는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갭 투자’ 때문에 주택 시장의 수요자가 전세 시장의 공급자가 되는 현상이다. 더불어 정부는 주택 소유와 결부된 다른 가치들을 간과했다. 대다수 중산층에서 주택 보유는 투자 겸 노후 보험 역할을 한다. 어설픈 정책 수단으로 이것을 깨기는 어렵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집은 계급을 인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전세 시장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것이 암묵적 신분 상승과 주택 보유로 향하는 교두보로 통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주택 시장을 가격과 수량이라는 단순한 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며 “한 재화의 수요는 그 재화 말고도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정된다는 것은 경제 원론에도 나오는 얘기”라고 지적한다.
팬데믹은 재정정책의 변곡점이 되고 있다. ‘큰 정부’와 ‘복지국가’ 개념이 그렇다. 여기에 고령화와 저출산, 탄소중립과 같은 지출 수요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모습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회계상의 수치 너머 사회적 편익과 비용을 읽을 수 있는 책임 있는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달라지면 제도나 정책도 변해야 한다. 우리는 있는 제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의 설계가 아닌 개혁을 고민해야 한다. 개혁에는 승자와 패자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합리적인 대안이라도 정치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세금과 복지의 절반은 정치다.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를 아우를 수 있는 대안을 만들고 이를 실천하는 정책 능력을 갖춘 세력만이 재정 전쟁의 승자로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