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아동 체벌을 ‘사랑의 매’, 가정 내 훈육으로 인식하면서 아동학대범죄는 별도의 양형기준도 마련돼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동학대가 범죄라는 인식이 퍼지고 특히 행위자는 보호자가 대부분이고, 피해자인 아동은 방어능력이 낮다는 특수성 등을 고려해 공적 개입을 높이고 현행 양형기준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일반 상해나 형사범죄와 다른 별개의 범죄로 법적으로 다뤄져야 한단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월 사법부에 양형기준 수정제안서를 제출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논의를 진행했다. 사법부는 복지부가 제안한 9가지 수정사항 중 7가지를 반영했으나 행위자가 보호자라도 가중요소로 보지는 않고 처벌불원은 감경요소로 인정하되, 엄격하게 정의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단 두 가지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복지부는 가해자가 80% 이상 부모인 상황에서 피해아동에게 ‘부모를 처벌하지 않으면 좋겠냐’고 묻는 것 자체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처벌불원은 삭제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5일 공청회를 열고 아동학대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양형위원과 복지부 등 관련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김혜래 복지부 아동학대대응과장은 가해자가 보호자인 경우를 형량 가중요소로 더하는 것을 추가 검토해야 하고, 감경요소 중 처벌불원은 궁극적으로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범죄는 그간 형량이 다소 낮게 선고되는 경향이 있고 감경인자도 불균형했다. 학대피해아동이 사망해도 징역 3년 미만으로 경미한 처벌이 40%에 달한다. 2000∼2016년 판결문 547개를 보면 ‘행위자의 반성과 자백’이 주로 양형인자로 고려됐다. 그러나 대다수 학대아동이 부모에 의해,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범죄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상당수 아동학대범죄에 별도의 양형기준이 없고 아동학대중상해·치사죄는 일반적인 상해 기준과 큰 차이가 없었다.
복지부의 제안을 토대로 양형위원회는 아동학대를 대유형으로 신설하고 여러 아동학대범죄를 중유형으로 나누기로 했다. 이로써 일반적인 형사범죄·양형인자와 다르게 아동학대범죄 특수성을 반영한 가중요소를 추가하고 양형기준이 없던 성적 학대, 매매 등의 아동학대범죄도 새롭게 처벌기준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또한 △‘피해아동이 6세 미만인 경우’ 가중요소 추가 △단순 교육·훈육을 ‘참작할만한 범행동기’라는 감경요소에서 삭제 △감경요소로서 ‘진지한 반성’을 제한적 경우로 한정 △집행유예 참작사유로서 ‘피고인의 구금이 부양가족에게 과도한 곤경을 수반하는 경우’ 삭제 등 복지부가 제안한 수정사항 다수를 양형위원회는 반영하기로 했다.
다만 양형위원회는 행위자가 보호자인 경우 더 무겁게 처벌해달라는 복지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지 피해자가 6세 미만 아동일 경우만 가중요소로 인정했다. 김혜래 과장은 공청회에 앞선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보호자-피보호자란 특수관계를 생각하면 보호자가 범죄를 저지를 시 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라며 “행위자가 보호자면 반복·은폐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처벌불원을 감경요소에서 완전 삭제하는 것 역시 복지부는 개선제안하고 있다. 양형위원회는 처벌불원을 참작요소로 유지하나 인정요건을 강화해 요건을 엄격하게 따지겠다는 입장이다. 다른 범죄에서 인정하는 참작요소를 아동학대범죄에서만 없애는 데 대한 고민도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요건을 아무리 철저히 따져도 처벌불원이 감경요소로 남아있는 것 자체가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혜래 과장은 “주변 친인척 등이 피해아동에게 ‘부모를 처벌하지 않으면 좋겠냐’ ‘부모 처벌해서 되겠냐, 처벌불원 제출해야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며 “그래서 (감경요소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린 아이가 우리 엄마아빠를 처벌해달라고 하기 어렵다”며 “처벌불원 삭제는 앞으로도 제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양형위원회는 이날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까지 종합해 다음달 중 전체회의를 열고 아동학대범죄 양형기준을 최종 의결, 확정할 예정이다.